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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시대, 융합의 한계와 가능성 >
2019-08-27
 



테크노필리아 혹은 테크노포비아? 2019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

핵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도시는 햇볕 한 줌 보기 어렵고 줄기차게 산성비가 쏟아져 내린다. 환경오염으로 농산물과 가축의 생산량이 급감하자 인간의 상당수가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고, 복제 인간들을 노예처럼 부려 새로운 터전을 개척한다. (영화 블레이드러너(1982))

한편, 어느 도시의 첨단 시설 안에서는 수천 명의 복제 인간들이 진짜 인간들의 난치병 치료를 위해 사육된다. 의뢰한 인간에게 신체 조직 기증을 마친 뒤 가치가 사라지면 가차 없이 폐기된다. (영화 아일랜드(2005))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복제 인간들은 자신들을 인간 대접해 주지 않는 진짜 인간들에게 항거하며 목숨을 건 질문을 던진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위 두 영화는 공통점이 있다. 고도로 발달한 미래 사회의 복제 인간을 소재로 했다는 것과 그 배경이 모두 2019년이라는 것. 2019년이 불과 넉 달 남짓 남은 지금, 영화가 묘사했던 상상은 그저 상상에 그쳤다. 인간다움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존재는 여전히 인간뿐인 세상이니, 우리는 다행이라 안도해야 하는 걸까? 혹은 디스토피아적 영화들과 맥을 같이 하는 스티븐 킹을 비롯한 일부의 주장을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AI가 인간 문명에 재앙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뉴럴링크社를 설립하고 인간의 뇌를 업그레이드하는 연구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 붓는 엘론 머스크처럼, 창과 방패를 함께 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당연한 일이겠지만, 실생활과 언론, 문화예술에서 체감할 수 있는 AI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 인간이 아님에도 타인은 물론 자신조차 인간이라 혼동할 만큼, 혹은 인간을 넘어설 만큼 진화한 어떤 존재가 거리를 활보한다? 이는 아직 영화의 공상으로 느껴질 뿐이다. 그럼에도 인류의 AI 기술은, 종종 언캐니 벨리(uncanny valley)를 넘어 섬뜩한 공포를 일으킬 만큼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가볍게 승리를 거둔 알파고 쇼크가 있기 이전부터 우리 일상에는 천천히, 혹은 빠르게 AI가 침투하고 있다. 보통 과학자라면 38년이 걸릴 분량의 논문 분석을 한 달 만에 완료하는 성능으로 암 진단에 활용되고 있는 인공지능 의사 ‘왓슨’, 또 공항이나 병원, 은행 등에서 고객 서비스를 하는 세계 최초 감정 인식 로봇 ‘페퍼’가 등장했고, 최근에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챗봇’의 활약으로 쇼핑몰이나 카페의 주문 접수 같은 간단한 업무부터 변호사나 심리치료사 등의 전문적인 역할까지 훌륭히 수행해낸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도 더 넓은 인간의 영역을 AI에 내어주게 될 것임이 자명해 보인다.

끊임없이 질문하는 인간, 결국 답을 찾아낼 것

AI 시대의 타임라인을 실시간으로 함께 채워가고 있는 ZER01NE의 크리에이터들이 AI Art Lecture의 에필로그를 위해 모였다. 게임개발자와 아티스트 듀오로 활동 중인 김영주&조호연 크리에이터, 그리고 인공지능 전문가 집단 weye의 윤동국 크리에이터가 각자의 분야에서 경험하고 생각하는 AI에 대한 시각과 시선을 공유하는 자리.

윤동국 크리에이터는 ‘What the AI'라는 주제로 ‘지능’과 ’인공지능‘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내놨다.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범람하는 AI에 대한 담론들과 실제 현장에서 적용 구현되고 있는 AI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고도 강조했다. ’지능‘이라는 개념에 있어 마땅히 정의되어야 할 조건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적인가‘, ’학습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선행 지식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가‘, ’여러 감각의 상호작용을 조합하고 판단할 수 있는가‘, ’문화적 특수성, 그리고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 등으로 판단해 보았을 때, 현재의 AI는 ’약 인공지능‘ 수준이라는 것. 미리 정의된 규칙이나 복잡한 알고리즘, 방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한 머신러닝을 통해 비교적 지능적인 동작을 하지만, 제한된 범위에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윤동국 크리에이터가 참여해 제작에 성공한 스키로봇 ‘다이애나’는 세계 최초로 11자 형태의 자율 주행이 가능한 로봇으로 사람처럼 슬로프의 기문을 요리조리 통과하며 활강한다. 기문을 통과할 때마다 점수를 주는 보상 체계를 통해 머신러닝 시키자, 로봇은 슬로프 전체의 기문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기문 하나를 두고 뱅글뱅글 도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게임 개발을 하고 있는 조호연 크리에이터 역시 사실상 머신러닝 전의 에이전트는 ‘깡통’에 불과하다며, 결국 인간이 소화해야 하는 머신러닝 보상 체계 설계의 어려움에 공감했다. 빠른 성과를 위해서 마이너스 대가를 과도하게 설정했을 때, 에이전트는 마이너스 누적을 피하고자 동작 자체를 포기하고 멈추게 된다는 것. 이런 현실적 어려움들에, 특히 게임 AI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성과 예시가 부족한 면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기존의 단순한 스크립티드 게임 AI는 머신러닝 도입으로 완전한 전환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영주 크리에이터는 게임 속 머신러닝 캐릭터들이 플레이어(인간)에 보인 ‘저항성’의 순간들을 흥미롭게 소개했다. 주로 인간에게 이로운 기능을 수행하는 대부분의 AI와 달리 ‘게임 AI'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인간(플레이어)과의 ’갈등 조장‘이라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미디어 아티스트, 비평가로 게임의 공간을 통해 디지털 현실을 조명하며 철학적 사유를 했던 하룬 파로키의 작품 속에서는, 가까이 다가온 플레이어에게 불편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NPC가 등장한다. 자신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 달라면서 “Back Off"라고 외치며 공격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그 당시 NPC 수준으로서는 놀라울 만큼 영리한 것이었다. 파로키 이후로 게임 AI는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고 플레이어를 더욱 큰 갈등과 문제에 봉착하게 만들고 있다.

전쟁으로 봉쇄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민간인 입장에서 플레이하는 게임 ‘디스 워 오브 마인’에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가 누적되면 플레이어의 멘탈이 조금씩 붕괴하고 심지어 자살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한 플레이어가 자살하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까지 그 우울감이 전이된다. 머신러닝된 게임 AI는 단순히 WIN-LOSE의 결과를 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감정을 건드리며 끊임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함으로써 게임의 현실감과 드라마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게임’은 현재 AI 연구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환경 중 하나로 꼽힌다. 게임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은, 비록 가상일지라도 복잡다단한 현실 세계와의 연결고리가 있다. 게임 내 에이전트를 위한 기술은 궁극적으로 현실의 현상에서도 많은 부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게임 AI의 무궁한 가능성에 대해 피력한 조현오 크리에이터는 게임 환경이 머신러닝의 지도학습, 비지도학습, 강화학습에 대한 반응과 결과를 빠르고 쉽게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가능성은 무한하지만, 한계는 분명하다는 것. 그리고 그 한계는 또 다른 가능성으로 향하는 단계가 될 수 있다는 것. 별다른 접점이 없는 상이한 분야지만, 대화를 하는 동안 AI를 바라보는 크리에이터들의 시선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윤동국 크리에이터의 말처럼, 현재의 ‘약 인공지능’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강 인공지능’이다. 특정 문제뿐 아니라 주어진 모든 상황에서 생각과 학습을 하고 창작을 할 수 있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데이터가 입력되는 순서대로 병렬, 선형적으로 처리하는 지금의 컴퓨팅으로는 강 인공지능을 흉내 내는 데 그칠 뿐, A.G.I 기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각을 비롯한 지금보다 폭넓은 데이터들을 비선형적으로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다양한 환경에서 실험되고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견 또한 진지하게 제시됐다. 이에 김영주 크리에이터는 ‘게임’이라는 가상의 안전한 환경이 AI 연구에 있어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하길 희망하며 기대를 보탰다.

AI가 우리 사회나 예술에 어떻게 접목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도 많은 분야에서 지속적인 화두로 대두되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애초부터 예측이 불가능한 문제일지 모르겠다. 현재의 AI는 6개월간 연구자들의 땀과 막대한 전력, 자본을 투자해 세계 최초의, 그러나 ‘가성비는 별로’인 스키로봇을 만드는 정도의 성취를 이루고 있지만, 그 성취가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키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는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AI가 활보할 우리의 미래는 테크노필리아를 이룬 유토피아일 수도, 테크노포비아에 잠식당한 디스토피아일 수도, 혹은 그사이 어디쯤에 공존하는 또 다른 세상일 수도 있다. ‘굳이 AI나 머신러닝에 대해서만 파고들어 연구하지 않아도 창의적인 작업의 수행 단계에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기술은 녹아들어 발전할 것’이라는 조현오 크리에이터의 말처럼,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일은, 불가능한 날씨 예측에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눈앞에 있는 돛과 키를 더욱 튼튼하게 손질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2016년에 있었던 최재천, 스티븐 핑커의 대담 중 한 대목을 발췌한 것으로 맺음말을 대신한다.

최재천(이화여대 석좌교수)/
50년 후는 어떨까요? 아마 많은 수의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 존재할 것이고, 여기저기 로봇들도 존재할 텐데, 그때 인간은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까?

스티븐 핑커(심리학자, 하버드대 교수)/
예측하기가 많이 주저되는 것이,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기술에 대한 예측에 얼마나 서툰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거든요. 신문에 나온 가장 최근의 트렌드를 바탕으로 너무 쉽게 50년 후를 추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죠. 그러나 그런 건 옳지 않아요. 단적인 예로 현대의 비행기 여행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점에서 50년 전에 비해 오히려 더 열악해졌죠. 오늘날 비행기 여행은 전혀 빨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공항의 보안 검사 때문에 더 느려졌습니다. 이것은 발전을 멈춰 버린 기술의 한 예죠. 비슷하게 유인 우주선을 생각해 보면 1972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44년이 지난 오늘 어느 누구도 달 너머로 가보지 못했죠. 50년 후에 대한 예측은 결국 예측일 뿐이고, 나는 그 예측이 틀릴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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