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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 가속 시대의 창작: 디자인과 예술이 미래에 마주할 몇 가지 증후들
전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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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 가속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구글에서 인공지능(AI) 개발에 여생을 바치고 있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주창한 것으로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되는 기술 발전이 선형에서 기하급수적인 양상을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이 법칙에 따르면 기술, 특히 인공 지능의 지적 능력이 인간 지능의 총합을 뛰어넘는 시점이 도래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시점이 오는데 이를 ‘특이점’이라고 부른다. 특이점이 과연 도래할는지, 대체 언제 가능한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우리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대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보급은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디자인과 건축, 그리고 예술에 어떤 파급을 가져올 것인가. 그리고 현재와 근미래에서 창작자가 직면할 사회적 역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기술의 발전은 창작 도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 예로 3D 프린팅이 있다. 인조물의 발생 양식이 지금껏 외부에서 내부로 수렴하는 관점을 보인 반면, 안에서 밖으로 적층하며 물리적 형태를 만드는 3D 프린팅 기술은 모자, 옷, 액세서리 등 소품부터 의자 같은 작은 형태의 창작물을 넘어 휴먼 스케일을 벗어난 건축, 유기적 요소를 재료 삼아 만드는 음식과 인공 장기 등에 이르기까지 장소의 제약을 넘고 경제적 효율과 다양성을 확보하면서 적극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중요한 내적 변화는 바로 알고리즘의 활용이다. 컴퓨터 연산의 비약적인 발달과 기술 공학의 진보로 인해 데이터 변수를 입력하고 디자이너와 건축가가 원하는 형상을 즉각적으로 눈앞에 구현하게 되면서 가상의 시행착오를 통해 물리적 공간에 구현된 작업과 초기 아이디어 사이의 간격은 극적으로 좁혀지고 있다. 건축에서는 도시 단위로까지 폭넓게 쓰이는 ‘빌딩 정보 모델링(BIM)’을 비롯해 ‘파라메트릭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우리에게 비정형 건축으로 인식되는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원형의 아이디어를 상정한 후 건물과 관련된 수많은 데이터를 변수화하여 알고리즘과 유기적으로 연결한 후 무한히 증식되는 대안들을 기반으로 최적의 결과물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이런 알고리즘을 활용한 ‘컴퓨테이션 디자인’의 핵심이 바로 AI다. 높은 수준의 연산을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뇌의 뉴런이 대응하는 방식을 활용해 지식을 축적하는 ‘딥 러닝’으로 날개를 단 AI는 이제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자부하던 창작 분야까지 침투하고 있다. 현재 AI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고, 바흐의 음악을 분석해 바흐 풍의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며, 반 고흐의 화풍을 연습해 그의 시각으로 바라본 사물을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딥 러닝을 기반으로 자가 학습하는 AI의 진화 과정은 과거 예술 분야에서 만연하던 도제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화가 지망생이 대가의 그림체와 붓 터치를 베끼고, 연습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화법을 도출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프로세스와 유사하다. 오히려 AI는 사람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자가 학습을 시도할 수 있어 반복적이거나 단순한 창작은 자동화 기능으로 순식간에 해결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2025년을 예측한 『유엔 미래보고서』는 예술과 관련된 미래 직종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요약하면, ‘미래 예술가’라는 새로운 직군은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로 인해 음악, 미술, 무용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작업하는 협동 문화가 당연시되고, 이 때 이 복합적 다원 예술은 초연결사회에 깔린 네트워크와 커뮤니티 망을 통해 만들어질 것이며, 기술과 신소재를 활용한 예술 활동은 당연시되고 예술의 창조가 교육과 놀이와 연결되는 접점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당연한 추측일진데, 이런 예측 가능한 아이디어의 총합을 넘어 예술이 미래에도 왜 여전히 필요한지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기술 발전으로 편리함이 증대하고, 자동화로 인해 여가가 늘어나는 삶은 지금 생각하기에 지극히 이상적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걸 누리는 미래에도 그 가치는 여전할까.

인간은 선천적으로 의미를 찾는 존재다. 다양한 개인적 신념을 기반으로 경험과 사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삶의 존재 이유를 찾길 원한다. 모든 것이 풍요로울 것만 같은 미래 사회가 꼭 절대적인 행복을 보장해 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왜 사는지’ 정신적인 고양감을 충족시킬 때 인간은 비로소 상대적이나마 만족감을 얻는다. 미국의 작가인 수잔 손택은  『문학은 자유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가의 일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그들을 흔드는 것이다. 공감과 새로운 관심을 열어주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열망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백남준)이며 예술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삶에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다.

AI 시대의 예술이 바라봐야 할 대상은 결국 휴머니티다. 이는 영원히 바뀌지 않는 진리다. 디자인과 건축은 이 휴머니티에 대한 갈증이 미래에 대한 창작자의 태도임을 인지하고 있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국제 학술제, ‘슈퍼휴머니티: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디자인하는가’는 디자인과 건축의 관점에서 다뤄야 할 미래의 인간상을 과학자, 미학자, 건축가, 역사가의 입으로 듣는 기회였다. 이스탄불 디자인 비엔날레 2017(2017 Istanbul Design Biennale)의 주제는 ‘우리는 인간인가? 종의 디자인: 2초, 2일, 2년, 200년, 20만 년’이었다. 건축 이론가 베아트리츠 콜로미나와 마크 위글리가 공동 큐레이터를 맡았는데 그들은 “디자인은 언제나 인간의 디자인이었으며 인간을 위한 서비스 형태로 존재해왔다”며 기술이 발전해도 디자인의 본령은 휴머니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래의 예술은 디자인과 건축이 대면하는 것 이상으로 큰 변화와 혼란을 겪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창작자, 직업인, 시민 등 여러 층위에서 요구하는 역할에 부응할 것이다. 환영의 세계에서 현실의 아날로그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 인간과 기계 사이에 인간의 특수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노력 아래 휴머니티를 자극하고 대중이 인지할 수 있는 경험적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이는 건축 공간, 혹은 디자인 사물을 통해 답보될 수도 있으며, 디지털 세계 안에서 환영적 교육의 일종으로 디자인돼 커뮤니티를 통해 엔터테인먼트로 보급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지금의 1인 크리에이터처럼 즉각적인 피드백, 실시간 대화, 관계성 확대를 통해 작가 스스로 인플루언서가 되어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겠다.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바로 기술에 대한 열린 마음과 호기심이다. “예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의 소중한 부분을 되돌아보게 하는 행위다. 예술가는 이를 표현함으로써 우리 삶에 이바지한다. 새로운 표현의 문을 활짝 여는 기술의 발전에 맞춰 예술가 또한 새로운 기술을 포용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미디어 아트센터 독일 ZKM의 초대 소장을 역임했던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리 쇼의 말은 수확 가속의 창작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한 예술가가 가져야 할 미래적 태도에 대해 비범한 힌트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