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탐구] 뜻대로 울지 않는 악기

2021.11.22

악기는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한이삭의 뉴포는 우리가 원하는 소리를 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뉴포 앞에서는 모든 연주자가 평등하다.

 

악기와 인간의 협업

원하는 소리를 얻기 위해 연주자가 끝없이 악기 연습을 합니다. 처음부터 뜻대로 되는 도구는 없으니까요. 비로소 도구를 내 뜻대로 다룰 수 있을 때 아마추어를 벗어나 프로라는 호칭을 얻죠. 한이삭은 능숙함으로 구별되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결코 정복할 수 없는 악기 ‘Airborne instruments nUFO(뉴포)’를 만들었죠. 원반 모양의 악기에는 소리와 연주 모드를 설정하는 8개의 아날로그 버튼과 즉흥적으로 소리를 바꾸는 8개 터치 버튼까지 총 16개의 버튼이 있습니다. 뉴포는 연주자의 움직임에 반응해 소리를 내기도 하죠. 악기에 설정된 수많은 소리와 다양한 버튼의 조합, 연주자의 움직임이 얽혀 예측할 수 없는 소리를 냅니다. 다양한 변수에 반응하는 악기를 연주자의 뜻대로 소리내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수많은 연습 끝에 몇 개의 패턴을 ‘체득’할 수 있는 정도죠. 뜻대로 소리를 낼 수 없는 악기는 마치 자율의사가 있는 듯 느껴집니다. ‘오늘 공연 어땠어?’ 뉴포와 함께 공연을 한이삭에게 사람들은 묻습니다. ‘작은 새가 날 위해 울어주지 않았어’ 공연이 영 탐탁치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날 공연이 성공적이었는지는 연주자만이 알고 있죠.

한이삭은 제로원데이를 통해 뉴포에 반응하는 설치 작품들도 함께 선보일 예정입니다. 여러 개의 조형물은 뉴포의 버튼과 움직임에 대한 신호를 전달받아 각각의 입력된 소리를 냅니다. 살아있는 생물은 아니지만 각각의 조형물도 자율의사를 가지고 있는 능동적인 기계입니다. 뉴포와 마찬가지로 데이터를 받아도 시시각각 다른 소리를 냅니다.

 

경계를 지우는 방식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일반적으로 노력을 통해 얻은 성취에 대한 대가를 받습니다. 사회가 발전하는 기본적인 매커니즘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렇게 구분된 프로와 아마추어가 상하관계를 이루기도 합니다. 노력은 개인의 의지입니다. 다만 의지가 발동하는 계기는 다양하죠. 피나는 노력으로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지만, 피아노에 애정을 가지게 되는 계기를 모두가 얻을 순 없으니까요. 누구도 마스터할 수 없는 악기 뉴포는 통해 수평적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한이삭은 디지털의 발전으로 우리가 얻는 최고의 장점 중 하나가 수평적인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은 많은 것을 쉽게 만들었으니까요. (과거에 비해 비교적) 쉽게 음악에 도전할 수 있고, 쉽게 자신이 머리 속에 그리는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게 합니다. 기술적인 제약이 많았던 크리에이티브 작업이 점점 간편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동기부여의 계기도 점점 공평해진다고 할 수 있죠.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는: Microphone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음악적 혜택 중 하나는 실시간 상호작용입니다. 한이삭은 마이크를 통해 소리를 채집하고 디지털로 합성하거나 변환해 출력합니다. 이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집니다.  공연장에서 소리를 채집해 공연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 제작되지 않은 날 것의 소리는 매순간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한이삭은 다양한 마이크를 사용합니다.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없는 소리도 감지하는 민감한 마이크부터 가청신호를 감지는 마이크까지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채취해 음악에 사용합니다.

 

누구나 개발자가 될 수 있는 작은 컴퓨터: Arduino & Raspberry pi

아두이노와 라즈베리는 쉽게 말해 누구나 전자기기를 제작할 수 있도록 만든 작은 컴퓨터입니다. 교육용으로 많이 쓰입니다. 작은 컴퓨터에 다양한 센서를 부착하고 간단한 코딩을 통해 사용자 원하는 걸 만들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 언어를 몰라도 인터넷에 공개된 오픈 소스를 활용해 만들 수도 있죠. 심지어 5V 미만의 저전력으로 구동되죠. 프로그램 개발과 전자공학을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필요한 디지털 기기를 구현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뉴포 역시 아두이노와 인터넷에 공유된 오픈 소스를 조합해 제작됐습니다.

 

현실과 연결하는 최소한의 장치: REM Babyface Pro & Faderfox UC4

자율성이 높은 뉴포라고 해도 연주자 입장에서 완벽하게 소리를 컨트롤해야할 때가 있죠.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악기인 뉴포가 소리를 내기 위해선 기성 제품들과 협업을 해야합니다. 이를 테면 컴퓨터와 스피커가 있겠죠. 미디 컨트롤러는 뉴포와 연주자, 현실 그리고 관객 사이에 최소한의 연결고리입니다.

 

작가 소개

한이삭은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운드 아티스트, 작곡가, 즉흥연주자 그리고 실험적인 전자 악기 개발자이다. 그는 UdK 베를린 대학에서 제품디자인과 제너러티브/ 컴퓨테이셔널 아트를 전공했고, 전자음악에 대해 물리적이고 신체적으로 접근하는 방식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이러한 개별 기술과 직접적인 음악적 상호작용을 통해 직관적인 즉흥 연주가 가능한 악기 ‘Airborne instruments nUFO’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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