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으로 대중적 아름다움과 공공적 효율성을 극복할 수 있을까? <여행 가방 속 내 방>

2021.2.24

예술과 기술, 그 물리적 융복합의 가능성

스스로를 다학제 그리고 다매체 예술가이자 디자이너로 칭하는 박은영과 디자이너이자 메이커로 활동해 온 현박의 협업 프로젝트 <여행 가방 속 내 방>은 끊임없이 달라지고 있는 현대인의 삶과 그 방식을 사유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매우 빠르게 바뀌어 가는 이러한 동시대 삶의 방식은 개인과 사회의 형이상학적 의식과 물리적 풍경의 구조 또한 그러한 속도에 대응하며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예술과 기술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 지향점에 있어 배치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과 기술은 지속적인 교감을 멈추지 않으며 그 가운데 융복합적인 결과물을 도출해 냈다. 박은영과 현박은 이처럼 미술과 디자인이라는 이 예술과 산업 사이에서 등장한 소프트 로봇이라는 매체와 그 미적 활용이라는 주제에 집중하여 본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예술에 놀이와 디자인을 더하다

박은영은 영화와 기술 연구 그리고 예술을 활용한 놀이와 디자인 개발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작업해 왔다. 그는 움직임이라는 물성과 교육적 창작이라는 의미에 주목하여 작품 자체가 움직이거나 이를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키네틱(Kinetic) 작품을 만들거나, 기계적 움직임을 재현하는 구동계를 활용한 기계 만화 연작을 제작하기도 했다. 박은영은 이와 같은 기계, 움직임, 유희 그리고 아름다움 등의 다양한 개념들을 포함하는 작업을 통해 개인,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활동과 경험을 예술적 때로는 기술적 범주 안에서 발생시킨다. 이번 <여행 가방 속 내 방> 프로젝트에서 그는 특히 ‘팽창기(Inflator)’와 ‘작동 장치(Actuator)’의 구동으로부터 가볍고 일시적인, 혹은 미묘하고 정서적인 움직임을 포착하여 그것을 소프트 로봇이 갖는 퍼포먼스적 특징으로 치환해 풀어내고자 한다.

본 협업 프로젝트에서 현박은 인플레이터와 액추에이터로부터 박은영이 발견하는 움직임의 감각에 더해, 그것이 갖는 실제의 작동 구조와 방식, 그리고 그 형태 디자인의 변경 가능성에 초점을 둔다. 그는 본래 3D 프린터의 보급이 불러온 개인 맞춤 시스템의 도구적 활용의 방법이나, 일종의 알고리즘으로서 디자인을 이해함으로써 오히려 그것의 전형성을 상쇄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작업해 왔다. 이렇듯 현박이 방법론화하는 다양한 규칙의 집합들은 철저하게 특정한 개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목적을 실현한다. 그가 개발한 방법론의 일반적 활용은 오직 특정 개인의 각기 다른 목적을 공공적으로 이루기 위한 지점에서만 허용되는데, 어쩌면 자기모순적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이 설정은 오롯이 사물의 도구적 특징과 그 제작의 과정에 집중하는 메이커로서 현박의 태도에 기인한다.

박은영과 현박이 차용하는 소프트 로봇 의미의 핵심은 바로 그 소재와 활용 방식에 있어 정형화된 기계화의 성격을 그것과는 완전히 상이한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에 있다. 이러한 소프트 로봇의 매체는 박은영과 현박이 추구하는 예술과 기술의 융복합적 측면 그리고 도구적 방법론을 통한 인간 중심의 사물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상호 공명한다. 이 소프트 로봇의 매체는 ‘이동성(Mobility)’이라는 주제와 프로젝트 안에서 조응하면서, 현재로부터 도래할 근미래의 새로운 실용성과 그 디자인의 형상을 이들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게 한다. 휴대가 용이한 천이나 종이와 같은 소재를 재단하여 만든 외형에 일정한 작동의 동기를 유발해 주기만 한다면, 이로써 개인의 공간에 이동성을 부여할 수 있다면, 나아가 그 이동과 설치의 가운데 일어나는 수많은 움직임이 사용자의 정서를 지속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떠한 삶의 방식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인가를 바로 프로젝트 <여행 가방 속의 내 방>은 고민한다.

개인의 관심에서 발아하는 대중적 아름다움과 공공적 효율성

다학제 예술가인 박은영과 다양한 매체 활용을 통한 메이킹의 방법을 고민하는 현박은 급변하는 현대인의 삶을 중심으로, 동시대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물리적 환경을 조성해 내고자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단순하게 새로운 물리 공간을 창출하는 것에 더해, 이로부터 실제 사람들의 삶에 있어 그 보이지 않는 감각과 심상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변화를 꾀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를 바탕으로 박은영과 현박은 ‘소프트 로봇(Soft Robotics)’를 주요한 매체로 한 프로젝트 <여행 가방 속 내 방>을 선보인다. 본 프로젝트는 끊임없는 ‘이동’을 전제해야 하는 현재의 삶의 방식에 주목하여, 이로부터 상실된 사적 공간을 확보해 다시금 이를 개인에게 되돌려주려는 어떤 실험이다. 본 프로젝트를 통해 박은영과 현박은 가변적이고 유연한 휴대와 설치를 담보 가능한 소프트 로봇과 인플레이터블(inflatable)의 방법론을 차용한 다양한 구조의 오브제를 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