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탐구] 가장 보편적인 음악

2021.6.30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귀가 불편한 사람들은? 작가 이원우(WONWOORI)는 행복이 선별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공와우 사용자와 건청인 모두를 위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汎(범)-대중음악가로 거듭나기

언제 들어도 신나는 대중음악이 넘치는 세상에서 현대 클래식은 너무 지루할지도 모릅니다. 바로크 시대를 기준으로 50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장르의 히트메이커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입니다. 20세기 이후, 근현대 클래식 작곡가들은 자신만의 영역을 만드는 것에 열중했습니다. 그만큼 대중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죠. 작가 이원우는 클래식을 전공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듣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장르의 경계를 넘어선 그의 작품은 관객의 경계도 넘어섰습니다. 심지어 귀가 불편한 사람들까지 그의 관객이 되었으니까요.

 

인공와우로 듣는 음악

청신경에 전기적 자극을 전달하는 인공 와우를 이용해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술을 통해 인공 와우를 달팽이관에 삽입하면 난청인 사람도 무리 없이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죠. 하지만 기술적인 한계는 뚜렷합니다. 바로, 음악을 즐기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음악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인공 와우는 사람 목소리 음역에 최적화된 기계라서 음의 높낮이를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연속된 음이나 여러 악기가 중첩된 연주 혹은 노래방의 사운드처럼 에코 섞인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감동적인 음악도 인공 와우 사용자에게 닿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다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귀가 건강했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약하게 들리는 멜로디와 음정을 따라가는 인공 와우 사용자의 고군분투가 필요합니다. 2019년부터 이원우는 인공 와우 사용자를 위한 노래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와우로그>를 발표했습니다. 인공와우 사용자가 잘 들을 수 있는 음악의 요소를 탐색하는 과정과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이 느끼는 소리의 세계를 엿볼 수 있죠.

 

감정 공유의 기준

2021년, 이원우가 제로원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와우스텝>입니다. 더욱 많은 인공 와우 사용자를 대상으로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의 기준을 만드는 중입니다. 수술 주기, 청각 개발 정도, 음악 경험, 사회 경험 등의 변수에 따라 편안하게 들리는 음악을 구분하는 거죠. 인공 와우 사용 1년 차에게 트와이스의 노래는 소음일 수 있지만, 10년 차에게는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이원우는 인공 와우 사용자에게 다양한 노래를 들려주고 어떤 요소가 그들의 기분을 변화시키는지 찾는 중입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인공 와우 사용자와 건청인이 모두 비슷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죠.

 

인공와우 사용자를 위한 소리 데이터를 수집하고 합성하는: MacBook

이원우는 <와우로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도레미파솔라시도’ 이외 것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원우는 데이터를 정리할 때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을 쓰고 데이터를 음악으로 표현할 때 MAX/MSP를 활용합니다. 이보다 좋은 프로그램이 없죠. 그는 이제 세상 모든 데이터를 음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뇌파, 날씨, 숫자, 도시, 교통도 음악이 됩니다. 이 과정을 데이터 소니피케이션(Sonification)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주식이 떨어지면 음이 낮아지도록, 오르면 소리가 올라가도록 설정해 음악을 만드는 거죠. 작가는 파라미터마다 원하는 소리를 넣습니다. 이 모든 건 맥북 하나로 충분합니다.

 

인공와우 사용자의 행동을 소리에 반영하는: ROLI Seaboard BLOCK

건반 모양의 미디 컨트롤러입니다. 이 악기의 재미있는 점은 소리를 입력하는 방법이 3차원이라는 것이죠. 건반의 가로축으로 음의 높낮이를, 세로축으로 음색을, 감압으로 볼륨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도’와 ‘레’ 사이를 쓱 문지르면 ‘도’와 ‘레’가 이어지는 듯한(밴딩) 소리가 납니다. 선반을 세게 누르면 볼륨이 커집니다. 사람의 행동을 직관적으로 소리로 반영하는 똑똑한 기계입니다. 자신이 듣는 소리가 높은음인지 낮은음인지 구분하기 힘든 인공 와우 사용자에게는 훈련하기 더없이 좋은 도구이기도 하고요. 이원우는 이 악기를 이용해 인공와우 사용자와 <와우로그>를 연주했습니다.

 

인공와우 사용자에게 적합한 소리를 찾기 위한 번거롭지만 정직한: Moog Mother-32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는 손으로 새로운 소리를 만들 수 있는 장치입니다. 물론, 컴퓨터로도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하지만 컴퓨터에 숫자를 입력해 소리를 만들다 보면 손과 귀에 익숙한 결과물이 나올 때도 있는데, 인공 와우 사용자에게 적합한 소리를 찾아야 하는 이원우에게 익숙함은 결과를 망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는 다이얼을 조작하고 전선을 재배열하는 물리적인 수고를 통해 새로운 소리를 발견하는 재미를 줍니다.

 

내가 나임을 확인하기 위한: OPEN – BCI

작은 기판이 인간의 뇌파를 감지합니다. 뇌파를 숫자로 바뀌어 컴퓨터로 전달하죠. 이 기기는 제로원 크리에이터 ‘아톰앤비츠’와 협업 중인 <비로소나>에 쓰일 예정입니다. 메타버스와 멀티 페르소나가 익숙해진 시대에 진짜 자신의 몸을 인지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작가 소개
작가 이원우(WONWOORI)는 해석하고자 하는 대상의 데이터를 음악에서의 최소 성분인 정현파에 대입하고 분석합니다. 이 과정에서 작곡의 영감을 얻으며, 분석된 대상을 예술 매체의 중심에 세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특히, 예술에서 소외되기 쉬운 대상을 조망하며 음악과 테크놀로지로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는 청각 장애인의 제한된 소리 인지를 연구하며 음악의 본질은 무엇인지 탐구하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테크놀로지과에서 컴퓨터음악을 공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