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영감_조영각 X 소설가 곽재식] 머리통만 남은 괴물, 무서운가, 불쌍한가

2022.3.7

로봇공학과 AI로 탄생한 작품에서 조선시대 괴물 전설을 생각한다. 옛 괴물과 현대의 직장인이 느끼는 공포 간에 공통점이 있을까?

 

조선 시대 전설을 보다 보면 커다란 머리통 하나가 수풀이나 울타리를 기어 다니며 쫓아오는 모습을 보았다는 괴물 목격담을 몇 찾을 수 있다. 특히 송희규라는 사람의 경험담이 유명했던 것 같다. <해동잡록> 같은 이야기책은 물론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행적을 후대의 선비가 정리한 글에도 그 목격담은 나와 있다. <해동잡록>의 이야기를 따르자면 사람 키보다도 더 커 보이는 커다란 할머니 머리 같은 것이 나타났다고 묘사되어 있다. 나중의 글을 보면 그런 머리가 나타나서는 사람을 홀리려고 하는 것인지 자꾸 이름을 불렀다고 되어 있다. 그래도 그다지 힘이 센 괴물은 아니었는지, 위협하면서 공격하려고 하자 그대로 물러났다고 한다.

조영각의 <Office Walker>는 전설 속의 그 괴물이 현대의 우리가 친숙하게 지내는 사무실 공간에 그대로 나타난 듯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나는 <해동잡록>에 실린 전설을 처음 읽었을 때 그렇게 머리만 움직이는 것이 혼자서 돌아다니려면 머릿밑에 마치 달팽이 몸 같은 구조가 만들어져 있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작은 벌레 발 같은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생각하다 보니 커다란 머리가 있고 그 바로 밑에 꼬물거리는 작은 발이 있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은 확실히 기괴할 것 같았다. 그런데 <Office Walker>의 모습도 여섯 개로 뻗어난 기계 장치가 짤막한 다리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장치가 있고 그 위에 컴퓨터 모니터 화면 같은 것이 올려져 있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움직일 수 있는 구조다. 내 눈에는 옛 괴물에 대한 상상이 그대로 기계로 나타난 것 같은 모습이라고 할 만했다. 게다가 <Office Walker>가 갖고 있는 화면에는 마침 이리저리 변화하는 사람 얼굴이 표시되고 있었다. 이 역시 움직이는 머리통 괴물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특징이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전설과 21세기의 기계가 비슷해질 수밖에 없는 좀 더 기술적인 이유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사람의 두뇌는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는 현상 때문에 무의미한 물체의 모양에서도 어떤 규칙성이나 형태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습성이 있다. 산봉우리의 바위를 보고 괜히 할머니 바위, 할아버지 바위, 용 바위, 곰 바위 같은 이름을 붙이는 관습이 널리 퍼져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사람은 사람의 얼굴 형상을 찾아내려는 습성이 강하다. 자동차 앞모습을 보면 헤드라이트 둘을 보고 괜히 사람 눈처럼 생긴다고 생각하고, 빼기 표시와 두 개와 점 하나를 조합한 -.- 정도의 단순한 기호를 보고도 많은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 모습을 떠올린다. 나는 조선 시대의 송희규가 정말로 괴물을 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신 어릴 때 어떤 움직이는 물체가 우연히 사람 얼굴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파레이돌리아 때문에 그것을 착각해서 그런 전설이 생겼을 거라고 짐작한다. 예를 들어 바람에 우산이 날려 가고 있는데, 우산에 우연히 검댕이 묻거나 찢어진 구멍이 셋쯤 있어서 사람의 눈과 입처럼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찬가지로 <Office Walker> 역시, 눈으로 쳐다보게 되는 화면을 가진 사람 머리통 크기의 네모난 기계가 있으면 그것이 무심코 사람 머리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감각을 이용하고 있다. 사람은 살면서 항상 남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느끼려고 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사람은 남의 얼굴을 보고자 한다. 따라서 기계의 화면이 사람의 주목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것인 만큼 그것이 사람의 얼굴이라고 느끼기 쉽다.

더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머리통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서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과거의 음극관, 곧 CRT 구조를 가진 화면 모양을 흉내 냈다는 점이다. 현재 전자제품에 널리 사용되는 얇은 화면이 아닌 옛날 처음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 쓰이던 앞뒤로도 두꺼운 모양의 화면을 일부러 따라한 것이다. 지금 널리 사용되는 화면은 너무 얇아서 붙여 놓는다고 해도 아무래도 사람의 얼굴보다는 책이나 메모장, 거울이나 스케치북과 더 비슷한 느낌을 주게 된다. 사람 머리 같은 정도의 부피를 표현하자니 최신의 인공지능 기술로 변화하는 영상을 보여주는 기계이면서도 겉모양은 한 세대 전의 잊혀 가는 모양을 따라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 때문에 <Office Walker> 에 측은함, 서글픔, 풍자의 정신이 깃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현대인들이 항상 익숙하게 일하는 사무실 공간 위에 사람 얼굴을 달고 등장한 이 벌레 모양의 기계 괴물은 사람이 사무실에서 일하느라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잃어 가며 벌레처럼 퇴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화면으로 표시되는 발표 자료와 보고서로 보여줄 수 있는 결과가 아니라면 사람의 나머지 가치는 필요 없다는 점을 화면 머리통과 다리만 달고 부산히 기어 다니는 이 기계가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오히려 흘러간 옛날 기계의 모습처럼 보인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그런 괴물 같은 삶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고 있는지를 고민해 보게 되었다. 어찌 보면, 그 낡은 시절에서 이제는 벗어나자고 일깨우는 것 같기도 하다.

 


 

곽재식 (소설가, 과학자)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이자 소설가이다. 카이스트에서는 화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최종 학력은 연세대학교 공학박사다. 2006년 단편 <토끼의 아리아>가 MBC 베스트극장에서 영상화되면서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과학 교양서인 <로봇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 소설 <행성 대관람차>,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등과 과학 논픽션 <괴물 과학 안내서>,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의 저자이다. 전문분야인 과학, SF를 중심으로 여러 장르에 걸쳐 다수의 소설을 출간하며 꾸준히 방송 출연과 강연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조영각 (뉴미디어 아티스트)
조영각은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이 우리에게 제기한 자연/기술/가상/물리 환경 등의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다양한 기술, 사회, 문화적 이슈를 탐색하는 활동을 한다. 이번 <Office Walker>는 일상의 한 풍경을 재구성하며 인간과 기계, 사물과 사회와 같은 다양한 주체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