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교육을 말하다

2019.7.30

4차 산업혁명과 필연적 교육 혁명 – 인재상의 물갈이

“학교 다닐 때는 이것도 안 해야 되고, 이것도 하면 안 되고. 정해진 룰을 잘 지키는 게 모범생인 거잖아요. 근데 취업할 때 보면 창의성을 본다고 한단 말이에요. 마치 나는 열아홉 살 때까지는 수녀원 생활을 했는데, 스무 살이 되자마자 ‘넌 왜 스티브 잡스가 아니냐’고 질문을 받는 느낌이에요.” (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상담 내용 중)

오랫동안 청소년을 상담해온 상담가 장재열 씨가 자신의 칼럼을 통해 소개한 어느 학생의 말이다. 일반적으로 자기소개서는 고등학교 고학년 또는 대학 졸업이 임박해서야 처음 써보게 될 텐데 요즘 ‘모범 자소서 예시’에 빠짐없이 들어있다는 ‘창의적 아이디어로 도전한 경험’이라는 항목을 마주하고는 난감해하는 학생들이 많은 모양이다. “창의를 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요?”라는 학생들의 반문에 어른들은, 지금까지 우리의 공교육은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한국의 역사 속에서 사회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고 발전 시켜 온 이들은, 대개 ‘추격형 인재’들이었다. 책상 앞에 돌부처가 되어 책을 통째로 암기하는 전략에 능한 ‘추격형 인재’들은, 앞으로의 세상에서 효용 가치가 빠르게 줄어들거나 상실될 것이라는 게 현재 팽배한 여론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A.I와 동거하게 될 근 미래는 지금까지 인류가 겪은 어떠한 먼 미래와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추격형 인재가 아닌,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고 배우는 자세의 ‘선도형 인재’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의 교육이 이런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다.

미래를 위한 혁신 교육, 대안을 제시하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맞이하게 될 교육 혁명, 미래의 교육이 나아갈 길에 대해 선도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ZER01NE 세미나를 통해 그들만의 해법을 제시했다.

세상에 없던 글로벌 혁신 대학, 미네르바스쿨

“미네르바스쿨 학생들은 새 학기마다 새로운 도시로 이동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서울, 하이데라바드, 베를린, 부에노스아이레스, 런던, 타이베이에 기숙사가 있죠. 필요한 다른 시설은 도시의 것을 활용해요. 학생들은 그 도시에서 학생이자 시민, 또 여행자로서 글로벌 감각을 익히게 됩니다.” (김은정/미네르바스쿨 시티 익스피리언스 매니저)

2014년 개교한 미네르바스쿨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학교다. ‘좋은 학생이 많으면 많이 받는다’는 주의로 입학자 정원도 없지만, 합격률은 2% 미만. 전 세계에서 응시하는 학생들로 경쟁률이 100대 1을 넘어서니 그야말로 ‘하버드, MIT보다 더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이다. 유구한 역사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명성을 압도한 개교 7년 차 미네르바스쿨은, 캠퍼스도 강의실도 도서관도 없는 대학교다. 세계 7곳의 도시에 마련된 기숙사를 제외하면 미네르바스쿨에서 학생과 교수를 위한 시설은 단 하나도 없다.

수업은 미네르바스쿨이 자체 개발한 플랫폼을 이용한 100% 온라인 강의 방식. 교수는 4분 이상의 발언이 제한되고 플랫폼을 통해 학생 개인의 발표 및 소통 능력, 논리의 타당성, 심지어 발언의 분량까지 체크할 수 있으며 가장 알맞은 시점에 알맞은 질문을 필요한 학생에게 골고루 하도록 훈련돼 있다.

집중력 저하 등 일반적으로 온라인 강의가 가지는 한계와 단점이 있지만, 미네르바스쿨 2학년에 재학 중인 준영 씨는 수업 중 그런 문제를 체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오히려 오프라인 강의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긴장감이 엄청나다고 설명했다. 오전 9시에 시작하는 강의를 듣기 위해 8시 59분에 일어나는 것은 얼마든지 괜찮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완벽한 플립러닝이 되어있어야만 한다. 교수와 친구들은 끊임없이 예상 못 한 질문을 던지고, 누구나 언제든 내 답변에 ‘싫어요’를 눌러 평가할 수 있다. 매 수업 후에 발표되는 점수를 보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강의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경영, 예술, 인문학, 컴퓨터 과학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각 도시에서 글로벌 시민으로 생활함과 동시에 학습한다. 다양한 기업 및 기관과의 연계 프로젝트, 인턴십, 리서치를 경험하며 자신의 결과물이 사회에 창조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교육 패러다임의 변혁을 위해 미네르바스쿨을 설립한 기업가 벤 넬슨은,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학교인 미네르바스쿨이 기존의 교육체제를 송두리째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과거의 교육 개혁이 매번 실패한 원인은 체제를 거부하는 것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려 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미네르바스쿨은 미국 정부에서 고지하는 기본 제도를 모두 갖추고, 졸업 후에는 학위를 인정받는 정식 교육기관이다. 중요한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체제와 융합할 수 있는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한 그는 ‘한국과 같은 사회는 교육에 관심이 적은 국가들보다 개혁의 속도가 훨씬 빠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기술과 사회를 융합하는 창의 교육, 포스텍대학교 창의IT융합공학과

벤 넬슨의 말처럼 한국에서도 미래 교육의 모델들은 부지런히 등장하고 있고 그 중심에 포스텍대학교가 있다. 그간 패스트팔로어로서 숨 가쁘게 달려온 한국의 IT산업들은 이제 여러 부분 정상의 자리에 올라 선도적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쫓아가야 할 대상은 점차 사라지고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야 하는 시점에 이른 것.

창의IT융합공학과(이하 창공과)는, 말 그대로 융합적 사고를 하는 창의적 인재가 새로운 미래를 이끌어 갈 것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2011년 신설됐다. 융합은 창의성의 산물이다. 새로운 것을 반복적으로 찍어내는 것이 미덕이던 지난 산업혁명 시대와 달리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존재하는 것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융합적 사고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포스텍대학교 가치디자인 연구센터의 김진택 교수는 융합적 사고를 위해서는 융합적 교육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년별로 전공에 맞춰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는 다른 대학과 다르게 창공과의 학생들은 본인이 연구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커리큘럼을 설계한다. 연구에 필요하다면 창공과 뿐 아니라 전기나 기계, 물리학과의 수업을 듣는 것이 가능하고 모두 전공 학점 이수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음성-문자 변환 서비스, 휴대가 간편한 3차원 거리 공간 측정기 등 창공과의 주요 수업인 창의IT설계에서 도출된 결과물 중 여럿은 이미 시판 중이거나 사업화를 진행 중이다. 창의IT융합공학과의 교육은, 학생들이 졸업과 함께 팔로어가 아닌 무버가 될 수 있게 했다. 자신만의 혁신적 무기를 손에 든 퍼스트무버. 그 무기의 실제 가치가 얼마큼이든 몇 장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보다야 의미 있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사회를 잇고 말하고 디자인하는 미래 학교, 사회디자인학교 미지행

앞선 두 사례가 미래 교육에 대해 내놓은 대안 중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례였다면, 사회디자인학교 미지행은 이제 막 혁신의 흐름에 걸음을 맞추기 시작한 새내기 학교다. 건축가 신혜원 씨와 문학평론가 함돈균 씨는 전문 분야의 교육자로서 한국 교육에 느낀 문제의식과 비판적 시각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의기투합해 미지행을 설립했다.

“미지행은 임박한 미래 사회의 의제들에 관해 공부하는 학교로 영국, 스웨덴, 모스크바 등에서 인큐베이팅 되고 있는 교육 스튜디오들과 ‘글로벌 프리 유닛’이라는 이름의 학교 연합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함돈균/미지행 공동설립자)

미지행이 표방하는 ‘움직이는 학교’, ‘잇는 학교’, ‘말하는 학교’는, 학교에서 지역으로 또 지역에서 지구촌 전체로 교육 현장과 연구 활동의 대상을 확장하며 ‘학교’가 일방적인 정보 충전소가 아닌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뜨거운 담론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생각, 몸, 공간, 도구, 소통 등 흥미로운 주제의 교실들은 각 분야에서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선생으로 참여해 학생들과 1:1 튜터링 방식으로 수업할 예정이며 올 7월, 시범 학기 운영을 시작했다. 공동설립자 함돈균 씨는 미지행이 아직 교육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교육기관은 아니지만, 인가 취득이 현행 과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래의 학교에서는 졸업장이나 학위 수여 증서의 가치가 사라질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 그러나 추후 학생들의 요구가 있다면 학교 연합을 맺고 있는 해외의 학교들과 MOU를 체결하는 방식 등 여러 관점에서의 해결책을 장기적으로 모색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미래 교육, 정답을 알고 있다면 미래가 아니다

인류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필연적인 교육 혁명의 시대를 맞았다. 근 미래 사회에서 무엇을 필요로 할지 파악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10년 후에는 현재 직업 중 47%가 사라지며, 인간의 할 일 절반을 기계에 내주게 된다(‘고용의 미래-우리의 직업은 얼마나 민감한가’/마이클A오스본)는 충격적인 주장으로 전 세계가 놀란 것도 벌써 수년 전 일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은, 정답을 잘 맞히는 학생이 아닌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학생을 위한 것이어야 할 터다. 10여 년 전,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씩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던 엘빈 토플러의 뼈아픈 비판을 10년이 지난 뒤에도 다시 듣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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