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Art Robot Invasion] 인공지능은 예술 창작의 주체일 수 없다

2021.2.24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작품 창작과 관련해 계속 의문을 품는다. 인공지능 예술가가 인간 예술가와 같은 작업을 있는가? 인공지능은 예술작품 창작에서 훌륭한 역할을 있지만, 창작주체로서가 아니라도구로서 그러하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은공학 아니라미학 문제이기 때문이다. (by <뉴노멀의 철학> 저자 김재인 철학자)

인공지능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인공지능이 인간만의 특권적 활동인 예술 창작 영역까지 넘보는 아니냐는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문제를 살피는 있어 검토해야 사항은 가지이다. 첫째, 현대인은 예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둘째, 오늘날 창작의 의미는 무엇인가? 셋째, 인공지능은 주체인가 도구인가?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만, 20세기 내내 통용되었고 현재도 통용되고 있는 예술 개념이 정립된 것은 18세기 전반기이다. ‘예술(fine arts, beaux-arts)’ 하나의 개념으로 정립된 18세기 초중반이며, 이에 상응해미학이라는 이름과 분과가 만들어진 것이 1735~1750년이다. 이런 역사성을 간과하면 논의가 겉돌기 쉽다.

먼저예술 개념으로 정립된 것은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 샤를 바퇴(C. Batteux) 의해서다. 바퇴는 1747년에 < 하나의 원리로 환원되는 예술> 출판했다. 제목에서 하나의 원리라는 말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전까지는 예술이여러 원리 의거했으며, 원리에 따라회화, 음악, 조각, , 건축, , 연극 공통점이 없는 서로 다른 활동으로 이해되었다. 바퇴는 18세기 전반에 오늘날 우리가예술이라고 알고 있는 여러 활동이 공통된 하나의 원리, 미적인 추구한다고 보았다. 이후 시간이 지나며 사진, 영화, 미디어아트, 행위예술 등이 하나의 원리를 추구한다는 이유로예술 추가되었다. 한편 예술과 관련된 이론적 실천적 학문으로서미학 독일 철학자 바움가르텐(A. G. Baumgarten) 의해 탄생했다. 바움가르텐은 1735년에 <시에 관한 몇몇 사항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라는 학위논문에서 처음으로미학(aesthetica)’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미학을시학의 철학(philosophia poetica)’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예술 창작을 위한 학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바퇴와 바움가르텐의 작업은 18세기 전반기 유럽인의 시각을 대변했다고 보이며, 예술과 미학의 탄생은 근대인의 역사적 성취를 보여준다. 훗날 니체는실존은 미적 현상으로서 우리에게 여전히 감당할 만하며, 그런 현상을 우리 자신으로부터 만들어낼 있다 극찬한 있다.

오늘날에도창작 의미는 250 전의 개념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는 자연에서미적현상을 발견하면예술이다!’라고 찬사를 보내지만, 이때예술 오직 비유적인 의미일 뿐이다. 역사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몇몇 경이로운 사건을 예술이라고 칭할 때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인간의 예술작품 창작 활동이 창작의으뜸 본보기이고 다른 유사한 사례들은 놀라운 결과를 보이더라도 단지 비유에 불과하다.

몇몇 창작자들은우연비의도성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1 대전의 한복판에서새로운 예술가는 항의한다 외친다다(dada)’ 허무주의적 절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릇 작가라면 결과물을 관객에게 내보일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아무거나 내보인다면 작가가 아니다. “하나의 작품은 작가가 안에서 자기 의도에 도달할 만족된다 렘브란트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공지능은 예술작품 창작에서 훌륭한 역할을 있다. 하지만 창작주체로서가 아니라도구로서 그러하다. 예술 창작은 작품을 결과물로 만들어내지만, 뭔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은공학 아니라미학 문제이다. ‘인공지능 예술작품 문제는 누구도순수 공학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인공지능의 작품 창작과 관련해 사람들이 계속 의문을 품는 이유다.

관건은 지난 250 동안 인간이 행해왔던 창작 활동과 똑같은 활동을 인공지능이 행할 있느냐다. 인간도 순수한 자유의지가 없다든지, 하늘 아래 새로운 창작은 불가능하다든지, 인공지능을 활용한 작품이 뛰어날 있다든지, 근대적 예술 개념이 너무 기준을 높게 잡고 있다든지 하는 반론은 핵심을 빗나가 있다. 사람들은 인공지능 예술가가 인간 예술가와 같은 작업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뛰어난지는 관심사가 아니다.

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인간 창작자와 인공지능을 비교하면 충분하다. 요점만 말하면, 인간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을 내보이기 전에 반드시 자체 평가의 과정을 거치는 반면, 인공지능은 무작위로 작품을 내놓는다. 인공지능은 원리상 평가 기준을 내장하고 있지 않으며, 평가는 인공지능에게 일을 시키는 인간이 떠맡는다. 인공지능은 물감, 대리석, 피아노, 글자 등과 똑같은 층위에 있는 도구나 미디어에 불과하다. 물론 도구나 미디어는 자체의 저항력을 갖고 있어서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도구나 미디어가 스스로 창작 작업을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설사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그건 자연의 우연한 작업에 비견할 있을 뿐이다.

작가는 인공지능을 코딩하고, 결과물이 자기 마음에 들면, 코딩을 수정한다. 우연과 무작위성을 중시하는 작가여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결과물은 자신이 기대하고 예상하는 범위 안에 있어야 하며, 그게 아니라면 굳이 낡은 개념인작가 자칭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결과물에 대한 작가적 의도가 없으면, 250 동안 인간이작품 창작이라고 불렀던 것과 아무 공통점이 없다. 앞으로 작가의 과제는 결과물 설계를 얼마나 잘하느냐, 인공지능을 도구나 미디어로서 얼마나 다루느냐일 것이다.

250 동안 통용되어 예술창작개념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역사에서 태어난 것은 역사로 마감될 운명이다. 그러나 근대의 발명품인 예술이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 사람에겐 가치를 보존하려는 쪽이 현명한 선택이다. 예술의 본질은 18세기 전반에 개념으로 발현되기 전에도 인간에 내재한 미덕이었으리라. 다만 충분히 개화하지 못한 오래 잠자고 있었을 . 아직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한 예술은 계속 인간의 몫으로 남겨두자.

인공지능에 비해 인간이 우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점에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뛰어나다. 다만평가하는 만은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다. 점에서 어쩌면 예술 창작은 인간의 마지막 보루로 남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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