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사회적 변화를 위한 촉매제로서의 예술

2019.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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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기술이 도래한지 100여년이 지난 오늘, 인간 사회는 지구 상에서 그간 염두에 둬 오던 시공간의 제약을 없애면서, 지구촌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그 중추신경계를 확장했다.”[1]

18세기부터 인간 사회는 우리의 감각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점점 많은 수의 기기를 도입하는 데 익숙해져 왔다. 인간의 감각기관에서 비롯되는 향상된 신경 자극으로서의 감각, 만인에게 알려지도록 표출되는 흥분의 원인으로서의 감각은 현대인과 그 사회가 느끼는 가장 강력한 충동으로 작용해 왔다.
예술가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새로운 매체와 도구를 개발하고, 시험하고 보급하는 과정의 최전방에서 활약해왔다. 이렇게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술가들[2]이 과거에는 늘 새로운 도구와 기술[3]을 개발하는 과정에 개입해왔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손을 써서 무엇인가를 만들 때 여전히 사용되는 기법은 이미 대부분 고대 예술인들에 의해 개발된 기법들이다.  중세를 지나면서 예술인들은 매체와 그 콘텐츠에 대한 아날로그적 복사, 재생 및 유통 방법을 부지런히 고안해 냈다. 좋은 예로 인쇄술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유럽 전역에서 매체는 혁명과 같은 변화를 겪으며 르네상스의 도래를 위한 핵심 촉매제가 되었다. 19세기 아날로그적 사진기술의 발명, 도입 및 고도화 역시 예술인들이 이끌었다. 나아가 알고리즘 기반 공정에 관심을 가진 예술인들이 1960년대 및 1970년대에 텔레비전, 비디오 등의 아날로그 원리의 전자 이미지 생성 및 전송 기술을 예술 분야에 도입하면서, 주로 엔지니어링 및 군사 목적으로 초기에 사용되었던 디지털 컴퓨터 및 통신 기술을 예술활동에 접목시켰다. 궁극적으로 이 점에서 예술가들은 통신 기술 기반의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다감각적 및 창의적인 디지털 애플리케이션과 새로운 창의적 도구가 태어날 수 있게끔 기여하였다.

몇 개의 사례를 찾아본다면, 우선 1969년부터 1971년 사이[4]에 미디어 아트 선구자인 한국 작가 백남준이 일본 출신의 텔레비전 관련 기술의 천재였던 슈야 아베와 함께 발명한 실시간으로 일곱 개의 미디어 소스를 동시에 편집할 수 있는 최초의 ‘비디오 신디사이저(video synthesizer)’를 떠올릴 수 있다.
“이 발명으로 하여금 텔레비전 화면을 다빈치처럼 정교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르누아르처럼 화려하게, 몬드리안처럼 깊이 있게, 폴록처럼 힘 있게, 재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으로, 화가의 캔버스처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부터 백남준이 텔레비전을 미학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데 사용한 새로운 영상 편집 기술은 일반적인 방송 영역에서도 활용되면서 전체 세대의 미학적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엔터테인먼트, 게임, 일반 통신 산업영역이 제한 없이 사용하는 영상 및 이미지 처리 프로세스는 백남준의 개입 이전 시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다 경직된 미완성의 프로세스의 의도적 전복에서 그 뿌리를 확실히 찾을 수 있다.
스마트폰 기술이 도래하기까지 아직 한참이 남았던 1990년대, 미디어 센터(ZKM) 산하 비주얼 미디어 연구소[5]는 호주 작가 제프리 쇼의 진두지휘 아래 이미 360도 파노라마 영상 촬영 및 디스플레이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제프리 쇼와 그의 팀은 파노라마 카메라와 파노라마 영사기술과 함께 25개 카메라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하나로 통합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였다. ZKM의 크리에이티브 연구 및 제작의 주목적은 예술 프로젝트에서 사용될 혁신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설치 방안에 대한 예술적 연구와 개발이었다. 그 결과 태어난 ‘파노라마 기술’은 ‘파노라마 스크린’과 주변 환경 촬영에 사용되는 특수 소프트웨어인 ‘파노라마 디스플레이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디스플레이 시스템이다. 모바일 통신이 전세계적으로 보급된 오늘에는 파노라마 기술이 세계 모든 스마트폰에 탑재된 일반적인 애플리케이션이 되었다.
예술가, 과학자 그리고 엔지니어 간의 협력에서 태어난 성과 중 또 하나는 Centerbeam이라는 프로젝트이다. Centerbeam은 철강으로 만들어진 44m 길이의 중앙 축을 중심으로 당시로는 최신 예술 매체였던 레이저, 홀로그램, 증기, 네온조명, 비디오, 공기를 주입하여 사용할 수 있는 인플레터블 등을 결합시키는 거대한 컬트적 멀티미디어 기기였다. 1977년 독일 카셀 시에서 개최된 도쿠멘타 6에서 처음 전시되었다[6].
보다 최근 사례로는 2016년부터 미국 플로리다 주의 탬파 국제 공항에 영구 설치된 알고리즘을 활용한 스페인 출신 다니엘 카노가르의 작업Tendril이다. 그가 개발한 유연한 LED 타일을 활용한 거대한 입체적 미디어 작품 카노가르 작품으로, 구부러지고 꼬인 띠에 자신이 개발한 이 타일을 붙임으로써 공항 입구의 천장 아래에 부유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포도밭을 연상시키는 효과를 얻는다. 이처럼 평면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일은 미래 기술이 고안해 낼 수 있는 가장 전도유망한 솔루션이다.
예술적 재사용, 고립, 전용, 해킹, 놀이 등은 기존 체제를 뒤엎을 수 있는 행위이며 이를 통해 이미 알려진 재료와 기법의 고도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21세기가 도래하기 전 컴퓨터 게임과 비디오 게임은 이미 경제적 기여도가 높은 매체였다. 오늘날 이런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또 다양해졌다는 점은 21세기 전야에 비해 관련 기술이 급속히 발전했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비디오 게임과 애플리케이션이 소위, ’일반적 문화 기술’ 차원에서 보다 중요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제학적 원리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근시안적 시각으로만 바라볼 때 예술은 손쉽게 대량 생산되고 복제되어 세계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상품으로 보일 것이다. 문화를 어떤 물건이나 인격적 특성을 보유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고대로부터 인간사회가 인지해온 사실은 바로 문화란 가지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문화는 인간이 자신이 속한 세계의 현상과 요소를 차용하고 또 그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자 행하는 일종의 창의적 프로세스이며 여기에 경제활동도 포함된다.
결국 문화는 경제와 상극을 이루지 않는다. 문화의 모든 형태와 유형은 도리어 모든 경제활동의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촉매제이다. 연구, 분석 그리고 대립을 아우르는 창의적 프로세스 끝에 탄생하는 문화는 단순한 제품 혹은 상업적 물품이 아니다. 문화는 사회의 양심이다. 특히 예술은 문화의 가장 고귀한 표현으로서 민주주의 사회의 현 주소, 그리고 그런 사회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인식하게 해주는 적극적인 과정이다. 예술은 인식의 관문이다.
예술의 정확한 의미는 발명과 개입, 역량과 지식, 인식과 실천 그리고 신기술이 태어나는 기존 방식의 전복을 뜻한다. 예술의 발전이 기술 및 사회 변화를 종종 앞서는 경우도 있다. 발명과 개입이 사고방식, 유형, 행동양식, 기술도구 등을 예고 및 촉발하고 준비시키면서 이런 요소들이 모든 사회적 영역에서 변화를 맞이하는 일, 그리고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한다. 끝으로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은 ‘전쟁이 만물의 아버지’가 아니라 ‘만물의 어머니는 예술’이라는 점이다


[1] 참고문헌: 마샬 맥루한,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 (3쪽), 1964년 캠브리지 대학교 출판물
[2] 여기에서 ‘예술가’라는 용어는 전통적인 예술 형식으로 축소되지 않고 오히려 가장 넓은 의미로 이해된다. 장인 정신과 공학 분야에서의 성과는 예술 분야에서의 발전에서 분리 될 수 없다. 예술과 ’테크네’는 분리 할 수 없으며 상호 연결되어 있다.
[3] 최초의 ’동굴 화가’는 스스로를 근대 의미에서의 예술가로 인지하지는 않았지만 숯과 흙 피그먼트로 사냥 동물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아마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자연에 대한 결정적인 새로운 인간 이해와 그에 따른 사회 진화를 위한 강력한 충동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창조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4] ’New Tendencies Movement in Art’를 생각해보라.
[5] ZKM | Center for Art and Media Karlsruhe, Germany
[6] 작가 라우리 버게스의 아이디어에 따라 본 설치 작품은 미국 MIT의 첨단 비주얼 부문 연구 센터에서 오토 피에네의 책임 아래 실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