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derline between Human & Non-human] 현대미술가 박관우, 인간과 비인간, 그 경계에 대한 고민

2021.2.24

자신에게 한번 물어볼 . 감정은 인간만의 것인가? 그렇다고 말한다면 이유도 곰곰이 생각해보라. 현대미술가 박관우는 하나의 물음에서 출발, 감정이란 존재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고민했다. 이를 통하여 인간과 비인간을 어떻게 구별할 있을지.

인공지능 시대에는 누가 인간이고, 누가 인간이 아닌지에 대한 경계와 의미가 마치 안개처럼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현재 과학기술은인간과 흡사하게’, 라는 목표를 향해 가열차게 전진 중이고, 인간의 전유물로 느껴졌던사고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의 지능과 유사한 로봇을 만들어낸다 해도 모방할 없다고 우리 인간들이 믿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감정이다.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설치미술가인 박관우의 물음이 시작된 지점이 여기다. 과연 감정은 인간만의 것일까? 우리가 신성시 여기고 성역화하고 있는 감정들이 영원히 불가해할까? 혹여 우리가 감정을 느낀다고 착각하는 아닐까? 인간 역시 코딩되어 있는 대로 반응하는 것이라면. 어느 음악의 리듬에 맞춰 흔드는 작가 자신을 발견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떤 기분이나 느낌, 감정이란 존재의 내부를 들여다보게 것이다.

2019 박관우 작가가 엔지니어인 이찬과 함께 LBL로서 작업했던 <안드로이드는 춤추고 싶은 기분을 느끼는가? 1, 2>제한된 환경에서 우리가 상대방이 인간인지, 아닌지 구분할 있는가?’라는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을 재구성한 것으로, 튜링이 주목했던사고활동이 아닌, ‘감정 인간 정체성의 발현 요소로서 새롭게 조명했다.

인간과 외형상으로는 전혀 구별되지 않는안드로이드 역할을 부여 받은 30 남짓의 연기자가 관객들과 공존하고, 비어있는 작품 전시 공간에서는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남자의 모습이 반복 재생된다. 연기자들이 춤을 추는 퍼포먼스가 지속되는 1시간. 이때 관객들은 인간으로 위장된 자들과 뒤섞인 상황 속에서 그들과 같이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서로 누가 연기자이고 관객인지 전혀 모른 . 누가 인간이고, 누가 지시에 따라 행동한 안드로인지 모른 말이다.

그리고 작가가 던진 질문들. 인간은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을 느꼈는가? 그들은, 안드로이드는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을 느꼈을까? 그러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있는가? 만약 우리 인간이 춤을 추고 싶었는지 이유를 없다면, 춤을 추는 우리들과 춤추도록 설계된 안드로이드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말할 있을까? 만약 그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를 개발하는 미래가 온다면, 우리는 인간과 비인간을 현재의 기준으로 구별할 있을까?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상황 속에서 생겨나는 궁금증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와 의미, 그리고 그를 규정짓는 기준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게 한다. 더불어 박관우 작가는 흥미로운 질문의 전환을 요구하기도 한다. “인간이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이 아닌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인간으로 간주할 있는가?’라고 질문을 바꿔야만 해요.” 이는 컴퓨터 과학자 앨런 튜링이기계가 생각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우리가 컴퓨터로부터의 반응을 인간과 구별할 없다면, 컴퓨터가 사고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과 맥락이 닿아있다.

4번째 작업까지 이어진 <휴먼 컨버세이션> 시리즈도 같은 범주 안에서의 영상 실험이다. 인공지능 챗봇 사이의 대화내용에 인간이 일부 개입해 그들의 대화 어느 부분이 사람의 것이며, 어느 부분이 사람의 것이 아닌지 구별할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으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더욱 흐려지는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기술발전에 의해 증강될 미래 인류의 정체성과 경계선이 어떻게 될지 질문하며, 우리의 존재의 본질을 구성하는 조건들이 결국 무엇인지 재차 묻는다.

한편, 박관우 작가는 조각, 사진, 영상, 인터렉티브 설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인간 자의식에 관한 철학적 탐구를 작업으로 풀어내왔다. “ 스스로가 익숙하지 않은 같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마치 거울 속에 비친 내가 타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죠.” 그는 과거해리성정체장애 증상을 겪었던 기억이 자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는 출발점으로서, 근원적인 씨앗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나와 내가 아닌 사이의 경계 대해 이야기하는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해줘 1, 2> 작가가 말하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비슷한 느낌을 안겨준다.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해줘 1> 가상현실 헤드셋을 끼고, 러닝머신 위에서 뛰고 있는 남자가 머리 바로 뒤에서 부양하는 드론의 카메라가 촬영하는 자신의 뒷모습을 가상현실 헤드셋을 통해 보고 있다. 자기가 자신을 쫓고, 한편으론 쫓기고 있는 형국인 셈인데, 그는 언제까지 달려야 하는지 모른 흘리며 달리고, 드론은 배터리가 소진할 때까지 날다가 추락한다.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해줘 2> 명의 연기자가 가상현실 카메라를 교차해 착용한 서로를 향해 걸어가다가 마지막에 육체적으로 만지는 순간, 마치 자신과 만나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대한 고민, 감각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때도 정의가 유효한지에 대하여 깊이 파고들며, 결국은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근거를 요소적으로 해체하면서, 헤아려보려는 실험이라고 있다. 그는 가상을 통해 현실을 보여주며, 그럼으로써 진짜 현실이 진실로 현실인가? 우리가 믿고 있는,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개념이 실체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다고 인지하는 환상인지에 대해 변함없이 묻고 있음을 알고 있다.

박관우 작가는 지금 겪고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발가벗겨진 것처럼 제대로 마주 보게 되는 결정적인 기회가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철벽이 처진, 우리가 응당 그렇다고 믿고 있는 여러 허울이 무너질 것이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에 관하여 묻고 답하면서 우리 인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면적이라고 깨닫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고 전한다. 또한, 우리가 정의 내리는 인간의 의미는 결코 유동적일 수밖에 없으며,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판단되는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인간은 무엇이라고 간주할 있을까?’ 그가 새로운 기술을 통해서 인간과 비인간을 규정짓는 경계를 요량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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