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주로 미래를 다룬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현재 없는 기술과 그에 따른 사회적, 문화적 현상 등은 모두 작가의 상상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SF는 그럴듯하다. 글 듀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는 가상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짧은 장편이다. 요새는 ‘메타버스’(닐 스티븐슨이 가상 현실을 다룬 80년대 사이버펑크 고전 『스노 크래시』에서 만든 말이다)의 인기 속에서 다시 핫 토픽이 된 소재인데, 과연 실체가 있는 유행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전에 일단 가상 현실부터 가져왔다. 완벽한 몰입감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 세계는 뇌와 직접 연결되는 형태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보다 한참 뒤의 미래다. 이 가상 현실 공간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양로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이 아이디어를 『디북』이라는 단편에서 한 번 써먹은 적이 있다. 아르카디아의 양로원은 독일 작가 헤르만 카사크의 장편소설 『강물 뒤의 도시』에 나오는 사후 세계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소설 여기저기에 카사크의 이름을 넣었다.
이야기를 만들려면 제한이 필요하기 때문에 광속의 한계를 도입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인 아르카디아는 이천이라는 소행성에 있는 가상 현실 세계로, 이 안에 들어가려면 일단 소행성 위 또는 그 근방에 있어야 한다. 지구나 화성에서 접속한다면 광속 제한 때문에 가상 세계와 제대로 된 상호 작용을 할 수가 없다. 소행성의 배경은 가상 현실 세계를 정당화한다. 빈곤한 외부 환경이 주지 못하는 즐거움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광속 한계를 도입했으니 이를 조금 더 본격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가까운 소행성들이 모여 만들어진 정치적/경제적 연합을 상상했다. 소행성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궤도를 바꾸게 되고 이는 수많은 서류 작업으로 이어진다. 이제 주인공에겐 일자리가 생겼다.
쓰다보니 약간 욕심이 생겨서 다른 서브 장르를 가져오기로 했다. 외계인 침략물이다. 단지 내가 만든 건 육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나노 우주선 군단이 싣고 온 멸망한 외계 문명의 디지털 데이터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요새 사람들이 UFO를 이전처럼 안 믿는 건,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일원이 굳이 직접 우주선을 타고 다니며 지구를 연구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가 아닌가 한다. 나는 변형된 외계인 아이디어를 통해 보다 그럴싸한 외계인 침략을 그려보이려 했다. 이 그럴싸함의 수명이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른다. 하여간 호전적인 외계인과 수상쩍은 성간 정치가 섞이자 전쟁이 일어난다. 온갖 액션들이 들어가는데, 나는 최대한 현실 세계의 물리 공간과 가상 현실 속 공간의 비율을 반반으로 유지하며 이들을 자주 뒤섞으려 노력했다.
이 모든 것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이전에 나온 과학적인 상상력들이 쌓여 만들어진 관습들을 장르의 틀 안에서 이용한 것이다. 그 과정 중 과학 법칙을 아주 심각하게 위반하지는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쓰다 보면 얼렁뚱땅 넘기는 부분이 있다. 이 ‘얼렁뚱땅’은 하드 SF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작품에서도 흔히 발견되는데, 아무리 과학적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작품이라도 이야기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는 그 ‘얼렁뚱땅’보다 아이디어를 더 먼저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렇다고 그 ‘얼렁뚱땅’을 일부러 찾아내 지적하는 재미를 버리라는 말까지는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