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ERSITY VOL. 2] AI 시인 만들기

2022.3.4

AI 시인을 만들기 위해 시인들은 책과 감정, 게임과 풍경을 AI에 입력하기로 했다. 시인들이 AI에게 선물한 시심이다.

 

황인찬

생물도감
요즘의 시인들은 그렇지 않은 편이지만, 선배 세대의 시인들은 식물이나 새의 이름을 꿰고 살았다. 생물의 이름을 많이 아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요건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종다양한 생물의 이미지를 이해하고, 그 차이를 예민하게 파악하는 것은 분명 시에 큰 도움이 되리라. 사실 나만 해도 종종 이미지 검색 등을 이용해 식물이나 동물의 종류를 자주 헤아려 보는 편이다. AI라면 더욱 능숙하게 해내지 않을까.

이상의 시
언어의 규칙을 벗어나고, 논리의 규칙을 벗어나고, 시대의 규칙을 벗어나 자유롭게 시를 쓰던 이상의 시를 AI가 배운다면, 거기서 어떤 규칙을 발견하고 어떤 갱신을 이뤄낼 수 있을까. 이상이 염두에 두고 있던 구체시(도상시)를 구현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세계 휴가지 일람
AI는 인간의 휴가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은 비효율적이고,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것이 인간의 휴가이기도 하다. 그 부조리함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해방감 같은 것이야말로 사실은 시가 작동하는 원리 그 자체 아닐까 한다.

살의
결국 모든 예술 행위는 무엇인가를 죽이고 싶은, 혹은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AI가 죽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거기서 출발하는 시는 또 무엇일까.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문학동네, 2015.
페소아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수많은 다른 이름들이 어지럽게 펼쳐진 그 방대한 자아의 은하계다. 다른 이름을 갖고자 하는 욕망을 배우지 못한다면 자신의 문학이 발전하는 일은 불가능하리라. AI가 자신에게 다른 이름을 끊임없이 부여한다면 어떤 인격, 어떤 이름을 갖게 될까. 직박구리, 동고비, 뭐 이런 것은 아니면 좋겠다만……

 

서윤후

프랑시스 퐁주, 『테이블』, 책세상, 2004.
AI에게 혼란을 주고 싶다. 결함이 아니라, 결함을 지닌 세계를 마주하는 자세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나? 이것은 시인의 입장. 언어가 텍스트를 떠나올 때의 자유로움을, 의미의 무한한 확장을 건네고 싶다. 이 책은 가장 문학적인 실험의 보고다.

시스티나 경당
성모 승천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된 이탈리아 시스티나 경당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건축 속의 건축, 실내의 실외, 인간은 가능의 최대치를 불가능이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 건축물을 통해 근거리의 보기 좋은 풍경을, 다시 볼 것.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2000.
나는 명백하게 AI와 인간을 구분 짓기 위해 사랑을 정의 내릴 것이다. AI가 사랑의 복잡한 미로를 단숨에 빠져나온다면, 미로 속에 머무는 사람들만이 시를 썼다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이 책의 재해석을 통해, 이 책이 계속 읽히는 이유를 통해.

구글 맵 탈출 게임
풍경이 해석을 허락할 때 시는 진행된다. 그렇다면? AI에게 가장 완벽한 지도 말고, 지도를 탈출하는 방법을 통해 풍경을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가장 가까운 공항에 가면 이 게임은 끝이 난다. AI는 그렇게 시를 끝내서는 안 될 것.

끝말잇기
한 사람이 기억하는 수많은 단어의 눈금들은 시가 걸을 수 있는 발걸음 수와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AI는 사람보다 유리하다. 하지만 우리는 사전을 토해내는 이 끝말잇기 봇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단어를 기억하는 일은 반복이지만, 단어를 추억하는 일은 반복을 재구성할 수 있다.

 

문보영

렘브란트, 〈야경〉, 1642.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1640년, 민병대 대장인 ‘프란스 반닝 코크’와 그의 17대원들로부터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 그림은 현재 〈야경〉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의도와 다른 모습으로 남게 된다. 그림이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야경〉의 중심에는 두 남자가 서 있다. 이 구도로 인해 나머지 인물들은 배경으로 물러난다. 그런데 그림을 복원한 결과 두 남자는 그림의 중심이 아니었다. 그들은 중심에서 벗어나 우측에 서 있다. 그림의 복원으로 인해 배경 인물들이 생동감을 얻고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AI에게 렘브란트의 잘려나간 그림과 원본을 입력하고 싶다. AI의 시는 인간이 쓰는 글과 달리 의도된 주제와 ‘자르기’, ‘중심’에 구애받지 않기를 바라서다. 주제란 결국 하나의 중요한 문장을 만들고, 주제 문장을 뒷받침하는 문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AI가 쓰는 시는 모든 문장이 주인인 시였으면 좋겠다.

시집
AI에게 입력하고 싶은 것은 인간이 쓴 시집이다. AI에게 세상의 시집을 모두 입력한다. 그리고 AI는 수많은 시집을 학습하고 자기 것으로 만든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AI는 특정 시인의 작법을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시인이 죽은 후에도 AI가 이어서 시를 쓸 것이고, 인간은 죽은 시인의 신작 시를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무늘보
나무늘보는 아주 느리다. ‘느림’은 얼핏 생존 경쟁에 매우 불리한 조건일 것 같은데 나무늘보에겐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나무늘보의 털에는 이끼가 낀다. 털에 이끼가 자랄 수 있는 이유는 나무늘보가 매우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 이끼는 사실 녹조류다. 그리고 나무늘보는 자신의 털에 자라는 녹조류를 먹는다. 덕분에 나무늘보는 위험하게 사냥을 나갈 필요 없이 나무에서 살아갈 수 있다. AI의 시에 나무늘보의 느림이 있었으면 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 시를 읽는 순간만큼은 조용하고 느리게 흐르기 때문에.

거꾸로 된 집
남아프리카에는 ‘거꾸로 된 집(Upside down house)’이 있다. 하트비스푸르트 근처에 위치한 이 집은 지붕이 땅에 붙어 있고 바닥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사람들은 표를 구입하고 거꾸로 된 집에 입장할 수 있다. 집을 거꾸로 짓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한 것일까. 시라는 것은 사물을 거꾸로 뒤집어 생각하는 행위일 것이다. 생각을 뒤집고, 사물을 뒤집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 그런 정신이 깃든 거꾸로 된 집은 AI가 시를 쓸 때 도움을 줄 것이다.

 

이우성

넷플릭스,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2020.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인간에 대한 존경심, 사랑이 없다면 시를 쓸 수 없다. 그 자신(AI)의 놀라운 가능성 역시 인간이 창조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런데 AI는, 정보를 습득하고 알고리즘이 이끄는 창의력을 발휘하는 거겠지? 감탄하기보다 감탄을 흉내내는 거겠지? 그렇다하더라도 조던의 역사를 보면 인간을 존중하게 될 수밖에 없어. 아닌가?

월드비전 웹사이트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수의 인간이 부를 독식하고 있으며 정말 소수의 인간만이 가까스로 자신이 가진 일부를 나눌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AI가 ‘휴머니즘’을 발견하고 그것의 가치를 습득한다면 약간은, 아주 약간은, 읽을 만한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형편없음과 위대함 사이의 어리석은 간극을 이해하는 것을 인간은 할 수 없다. AI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마르셀 뒤샹, 〈자전거 바퀴〉, 1913.
언어와 의미 사이의 관계를 재조합할 줄 알아야 한다. 현대의 ‘모든’ 뛰어난 작품들이 등받이 없는 나무 의자 위에 자전거 바퀴를 올려놓는 개념 안에 있다는 것을 AI는 습득해야 한다. 사실 시라는 게 언어를 낯설게 조합하고 그 안에 모호하게 의미를 삽입하는 거거든. 이 속성을 이해한다면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시를 쓸 듯!

팬톤 컬러칩
색의 존재를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어떤 색’이라고 이름 붙일 때 그것이 단 하나의 색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셀 수 없이 많고 다른 ‘빨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시인이 ‘빨강’이라고 적을 때의 난처한 감정도 이해하겠지.

이우성,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2012.
AI가 앞서 거론한 것들을 통해 배우고 언어의 패턴을 발견한다면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우성 시인의 첫 시집처럼 발랄하고 낯설고 위트 있는 시도 쓸 수 있을까? 이우성은 나다. AI가 이우성 시인의 시를 목표로 삼고 매진하기를 바란다. 다만, 이우성 시인의 시는 그 가치를 사람들에게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했으니 이 점을 교훈 삼아…… 아, 삼을 필요없고, 그냥 흉내만이라도 내면 훌륭한 거야. 목표가 원대하다, 이우성이라니! AI 따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