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기술] 예술 작품 속으로 들어간 로봇

2020.7.16

과학 기술의 발달은 예술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이런 질문을 던지다 보면 아인슈타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위대한 과학자는 위대한 예술가와 같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과학 기술과 예술의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하게 느껴지는 현실 속,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과학 기술은 예술의 원천이 되고, 예술은 과학 기술에 영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로봇 시대
SF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로봇이 이제는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공상은 이미 현실이 됐고, 로봇은 일상이다. 최근 비대면을 뜻하는 언택트(Untact)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로봇에 대한 관심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팬데믹이 맞물리며 로봇 시대가 빠르게 앞당겨지는 양상이다. <2031>에 따르면 2030년이면 인간과 기계가 공존 이상으로, 협조하는 관계를 맺는 사회가 현실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델 테크놀로지스(DELL Technologies)가 발표한 미래 경제(Future of Economy) 보고서에도 2030년에는 기계가 인간의 명령만을 따르는 것을 넘어서 인간을 대신하여 다른 기계들과 ‘자율적인 상거래’를 수행하는 것까지 가능해진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끊임없이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면서 기계 자신이 소비자로 진화하게 된다는 의견에서다.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 로봇이 우리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가운데, 예술 분야에서도 로봇 관련 이슈가 종종 들려온다. 아티스트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예술, 이젠 AI도 예술을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미 AI가 피카소나 렘브란트의 그림을 똑같이 그리는 모사 능력을 지니게 됐고, 우리나라에서도 AI 아티스트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AI의 작품만 전시하는 아트 갤러리도 오픈했다.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창작을 가능하게 하는 게 최첨단 기술이다. 현재는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되며, 완전히 다른 차원의 미학과 창조성을 제시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학 기술과 예술의 융합 
팀 보이드(teamVOID)는 서울대 공대 출신의 배재혁과 송준봉, 그리고 석부영 3명의 작가로 구성된 아티스트 그룹이다. 국내에서 과학 기술과 융합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아티스트라고 평가된다. 배재혁 작가는 그들의 출발점이 공대라는 프레임에서 탈피해 무엇인가 창조하고 싶은 욕망이었다고 털어놓는다. “팀 이름을 ‘빈 공간’을 뜻하는 보이드(void)라고 명명했습니다. 아무래도 공학 전공자로서 예술의 공간을 채우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름에 새긴 겸손함과는 달리 팀 보이드가 선보이는 작품은 확실히 별다르다. 기존 예술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한계를 벗어난 창의적이고 독특한 시도는 그들만이 구현할 수 있는 ‘공학적 미학’을 보여준다. 기술과 예술이 뒤섞여 선사하는 신선한 시각적 경험으로, 보는 이가 단숨에 작품을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작품에서 시선을 떼는 일도 쉽지 않다. 생경하면서도 매혹적이다. 과학 기술과 예술이 결합한 작품이 주는 감동은 분명 다르다. 이성적이고, 차가우며, 완벽하며, 스타일리시하다.

팀 보이드의 로봇 아트 
해외에는 로봇 암(Robot Arm)을 이용하는 작가들이 다수인 반면, 국내에선 아직까지 드물다. ‘로봇 아트’하면 유일무이하게 팀 보이드가 떠오른다. 삼성전자, 나이키, 젠틀몬스터 등 굵직한 브랜드와 협업하게 된 이유 또한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로봇 암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미래지향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마케팅하기에 로봇만큼 강력한 아이템이 없으므로. 신기한 로봇 팔이 짝을 이뤄 등장하는 예술 작품,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는 로봇의 움직임에 사람들은 가던 발걸음도 멈추고서 호기심 어린 눈빛을 쏘아댄다. 팀 보이드가 펼쳐놓는 세계에 발을 처음 디디면 작품 의도가 다분히 미래 지향적이라고 느껴지곤 하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로봇 암을 소재로 삼은 이유가 ‘미래’를 염두한 것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현재’를 상징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한다. “보통 로봇 하면 미래를 떠올려요. 그러나 실제로는 이미 로봇이 우리와 매우 가까이에 존재합니다. 현재 현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도구인데, 이것을 현재의 상징으로 차용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도 그럴 것이 독일에서 제작된 쿠카(Kuka)는 빠른 속도, 높은 정확성, 다기능이 특징인 다관절 산업용 로봇으로, 이 브랜드는 로봇을 생산한지 무려 100년이나 지났다.

국제로봇연맹 IFR에 따르면 산업용 로봇 밀도가 가장 높은 국가가 다름 아닌 한국이다. 실제 공장 자동화율을 계산했을 때, 직원 1만 명 당 631대가 로봇으로, 이는 전 세계 평균인 74대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자동차와 전자 분야의 제조업에서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동화 장비가 활용되고 있다. 이미 전 세계 기업들이 산업용 로봇의 사용을 확대 중이며, IFR은 코로나19 이후 로봇의 도입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팀 보이드의 작품은, 그리고 배재혁 작가의 설명은 우리가 진작부터 로봇 시대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상기시켜준다.

팀 보이드는 2015년 브랜드 젠틀몬스터와 ‘로봇’을 콘셉트로 1년간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쿠카 로봇 암을 이용해 공학적 움직임을 연극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들의 작품은 마치 하나의 연극처럼 플롯을 두고 로봇 암이 연기하는 퍼포먼스에 가깝다. 이 특징이 제대로 드러나는 작품이 젠틀몬스터와 협업했던 으로,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 2대가 선글라스 공장에서 일하다가 그중 1대가 자아를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본래 임무를 진행해야 하는 로봇과 자아를 인식한 로봇 간의 갈등과 화합을 통해 시스템 오작동에 관한 팀 보이드의 관점을 담아낸다. 또 다른 작품 는 ‘인공지능 로봇이 과연 자의식이 있는 형태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라는 철학적 화두를 던지는 퍼포먼스다. 기계가 입력값 이외의 행동을 저지르며 오류를 범하는 순간, 인간이 비로소 기계의 자아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한편, ‘인간 X 기계시스템’이라는 주제로 열렸던 2017년의 <광주 미디어페스티벌>에서 선보였던 는 두 대의 로봇과 초등학생, 미대생이 모여서 하나의 석고상을 그리는 작업으로 사람과 로봇이 각자 사물을 인식하고 그려내는 차이점을 관찰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로봇과 인간은 어떻게 다른가?’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는?’ 등을 고민하게 했으므로.

우리 사회의 시스템 
그들이 직접 정의하는 경우는 없지만, 팀 보이드는 미디어 아트(Media Art) 그룹이라는 타이틀로 불린다. 최근에는 로봇 암이 등장하는 연극적 로봇 아트를 자주 선보이고 있으며, 인터랙티브 미디어, 키네틱 아트, 빛 조형 등 다양한 매체를 가지고 작업 중이다. 그렇다면 주제는? 기본적으로 시스템적 관점으로 예술을 다룬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System)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존재는 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하나의 시스템을 시각화해서 관객 앞에 내놓는 것이죠.” 점점 더 추상화되고 복잡해지는 원리들을 작업으로 보여주자, 그런 의도에서 팀 보이드의 예술 세계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해를 위해 예로 든 작품은 가장 최근에 완성한 다. 로그는 실시간 출생/사망 데이터에 반응해 투명 아크릴 패널에 하루 동안 한 장에 기록하는 로봇 퍼포먼스 작업으로 인간이 만든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출생과 죽음이 지닌 의미와 그것을 기록하는 행위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여기서 산업용 로봇 암은 인간의 노동 대체 장치의 상징으로서, 로봇 퍼포먼스는 시스템화된 현대의 기록 과정을 물리적으로 시각화하고 있다. “현대 데이터 시스템의 존재감을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기록 방식인 각인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출생과 죽음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데이터를 기계로 기록하는, 시스템화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려는 의도를 명확하게 담은 작품이다. 2019년 인천의 스튜디오 파라다이스에서 전시했던 작품 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스템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시각화한 루미노 키네틱(Lumino-kinetic) 작업이다. 일반적으로 시스템은 환경에 적응해 자체적으로 변형되고, 그 구성요소들의 관계는 질서와 혼돈의 순환을 겪는다. 이 작품은 정렬된 26개의 프레임과 그 안에서 움직이는 기하학적인 형태의 조합을 통해 그 순서와 무질서를 보여주고 있다.

나중에 합류한 멤버가 디지털 미디어 전공자이지만, 배재혁과 송준봉은 각각 기계공학과 전자공학을 전공한 작가이기에 작업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좀 더 뛰어난 기술 구현에 집착했던 시기도 존재했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현재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주제를 잡는 과정이 작업의 전반을 장악하며, 기술을 더 중요하게 보거나 일차적인 것으로 여기진 않는다. 물론, 아이디어에서 뻗어나는 다음 단계가 설계와 프로그래밍으로 이어지고, 예술적 결과물로 향해가는 과정이 보통의 예술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이 단지 표현을 위한 도구에 머무른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팀 보이드의 예술은 기술이 전제되는, 새로운 형식의 예술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옳겠다.

기술의 발달과 예술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앞서 말했듯 과학 기술은 예술의 원천이 되고, 예술은 과학 기술에 더할 나위 없는 영감을 주는, 둘은 그런 관계로서 끊임없이 서로를 변화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