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박스 안으로 몰입하다

2019.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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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Legged Dog (3LD)’는 공감을 자아내고 복합적인 사고와 행동을 가능케 하여 인간의 경험과 표현을 확장할 수 있는 기술의 힘을 믿는다. 3LD는 연극, 공연, 무용, 미디어 및 하이브리드 형태의 독창적 작품을 기획하기 위해 설립됐다.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디지털 기술 발달로 가능해진 서술 기법을 탐구하고, 예술가의 자기 표현 및 관련 스킬을 계발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나아가 예술가가 새로운 도구와 표현 방식을 고안해 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열린 환경을 조성한다.

3LD는 도시 및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모아 뉴욕 시의 남단부인 로어 맨해튼에 위치한 ‘3LD 예술 & 기술 센터’에서 대규모 ‘몰입형’ 기술 기반 예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006년 3LD가 출범한 이래 3LD는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한 곳에 모으는 역할 수행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연간 700여 인의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3LD의 연극, 오페라, 무용, 몰입형 경험, 관객 참여형 예술,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들은 총 127회의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대용량 영상인 ‘빅 비디오’, 영상의 입체적 투영인 ‘비디오 매핑’, 센서 기반 콘텐츠 공급,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몰입형 경험 등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근 10년 동안 기술·예술 분야 논의를 지배해왔으며, 특히 아시아에서 이런 세부적인 범위의 논의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 영상처리 기법은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유한다. 특히, 상업적 메시지 전달을 가능케 하고 일부의 경우 관객과 예술가 간의 관계에서 보다 많은 참여가 가능해지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법은 특히 가상현실과 스마트폰 등의 ‘스몰 스크린’ 기반 기술의 경우에, 단일 유저가 스스로의 경험에 몰입하는 유아론적 ‘닫힌’ 경험을 유도하여 디스플레이 되고 있는 미디어 및 콘텐츠의 영향과 그 범위에 궁극적이며 근본적으로 제약을 가하게 된다.

모든 형태의 영상 예술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명은 유의미한 발전이며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창조했다. 하지만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런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오로지 메시지 전달과 성과에만 집착하는 기업들의 상상력 결여가 매우 두드러진다.

이런 신기술을 도입하여 거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원동력 삼는 개발 방식은 과거에 있었던 기술의 폭발적 성장과 보급의 경험과 달리 오늘날의 기술이 지니는 가능성을 도리어 제한한다. 제대로 자금 지원을 받아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놀이, 혹은 전혀 제약이 없는 실험 내지는 순수 연구를 할 수 있는 소위 ‘열린 공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학 연구실, 국영 예술 센터, 여러 ‘차고’ 형태의 연구 공간 등과 같은 과거 자유로운 개발 활동이 꽃을 피웠던 플랫폼조차 스폰서 계약을 수용하면서 연구개발 용역 비즈니스가 되었기에 기술 개발 관련 순수 연구 내지는 자유로운 놀이가 매우 드물어졌다.

이런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예술·기술 센터 그리고 컴퓨터를 활용한 ‘코드 예술가’들의 비공식 네트워크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뉴 미디어 및 인터랙티브 기술의 가장 흥미로운 기술 도입 사례들이 예술 프로젝트, 엔터테인먼트 분야, 마케팅 캠페인 등에 때때로 참여하는 독립 예술가들을 통해 나오고 있다. ‘모먼트 팩토리’와 같은 기업이 대표 사례다.

하지만 예술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적 혁신이 일어나는 영역은 영상처리 기술 혹은 인터랙티브기술 분야가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예술 분야의 가장 중요한 기술적 혁신은 단일 인터페이스에서 유저가 다중채널 음성, 영상, 센서 데이터, 기계 및 기기를 동시에 기밀하게 통제할 수 있으며 다른 참여주체와 안정적 상호호환 하면서 프로토콜을 가리지 않을 수 있는 다중화된 소프트웨어의 개발이다. 이사도라(Isadora), 큐랩(Q-Lab), 터치디자이너(Touch Designer), 에이블턴라이브(Ableton Live) 등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강력하면서, 유연하다.

A/V 비즈니스와 소위 시스템통합(SI) 기업들은 3LD가 ‘부서진 박스’로 부르는 사업 모델을 전파하기 위해 사용이 어렵고, 비싸며, 신뢰할 수 없는 시스템에 주로 의존하며 이를 보급하려 한다. 이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에서 유저/소비자가 유지보수를 위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시스템에 접근하려고 할 경우, 기업의 전용성 기술로 인해 시스템이나 해당 기능 접근이 금지된 경우를 발견한다. 이런 기능을 활용하고 싶을 경우 시스템을 ‘잠금해제’하기 위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혹은 시스템이 고객이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없는 기업 고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을 때도 있다. 이런 부서진 박스의 사업 목표는 기관 고객들이 장기 유지보수 서비스, 업그레이드를 하기 위한 콘텐츠 거래 계약에 대한 수요를 만들고 이런 고객이 내부적으로 해당 역량을 개발하지 못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3LD가 제공하는 디자인 및 기술 솔루션은 유저가 원할 경우 자체적인 복합 멀티미디어 통합 시스템을 관리 및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몰입형 경험, 라이브 공연, 체험형 디스플레이 및 사운드스테이지, 현지 촬영 등의 환경에 맞는 솔루션이다. 3LD가 사용하는 하드웨어는 쉽게 찾을 수 있고, 저렴하고, 관리와 교체 그리고 업그레이드가 용이하며 소프트웨어 역시 저렴한 공개형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 형식이며 이에 대한 유저 교육도 제공하고 있다. 3LD는 예술가가 준비하는 체험형 작품들을 업데이트하고 그 경험의 깊이를 더하는 몰입형, 체험형, 홀로그래픽, 무대 및 영화 작품용 기술을 활용하여 예술적 표현의 제약을 뛰어넘고자 한다. 

뉴욕시 맨해튼에 소재한 3LD의 ‘21세기 예술·기업 센터’를 설계할 당시 32명의 건축가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에게 던진 “3LD의 21세기 예술·기업 센터의 정보통신 설비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함정이 있었다. 답변 대부분은 A/V산업 내 경험 혹은 업계 관계자와의 인연에 기초하는 경향이 있었다. 답변 내용을 읽어내려 갈수록 보다 높은 비용의 적절하지 못한 제안이 나왔다. 당연히 정답은 2년 안에 대부분의 건물에 무선 기반 통신망이 도입될 것이기에 ‘21세기 예술·기업 센터’에 전선 기반 통신망 설계가 필요 없다는 답변이다. 필자는 건물 시설 공사가 마무리되고 시설 관련 모금 캠페인이 완료되자 마자 ‘기술 설비 업그레이드’를 위한 모금 캠페인을 추진해야 했던 사례를 다수 목도해 온 경험이 있다. 이는 건물이 완공될 즈음이면 설계 당시 준비한 건물의 소위 ‘디지털 인프라’가 더 이상 완공 시점의 최신 기술의 수준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3LD는 ‘고정’ 설비를 필요로 할 경우 모든 설비는 바퀴가 달려 있어야 한다거나 전선관 대신 개방형 전선 트로프를 사용한다는 등의 조건을 제시하는 ‘투어 명세서’ 방법으로 공사를 주로 진행한다.

3LD가 기술을 개발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예술가가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하는 도구 혹은 기법을 고안해 내는 일이다. 도전정신을 가진 예술가들이 3LD의 공간에 머물며 거기서 그들이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시설 및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3LD는 또한 작품을 만드는데 수반되는 경성 비용(hard costs)의 상당 부분을 축소하거나 제거하여 예술가의 가장 야심 찬 새로운 작품이 실현될 수 있게 한다.

3LD의 기술혁신 중심 융합형 미션은 그 상업적 적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그 결과 3LD는 높은 마진의 수익사업과 자선활동을 균형 있게 실현하는 혼합형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였다.

3LD의 ‘특수 프로젝트 그룹’은 수익사업을 추진한다. 기업, 대규모 비영리 단체 그리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예술가들의 프로젝트를 수주하여 대규모 공연, 설치 프로젝트, 체험형 프로젝트, 미디어 디자인을 수행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공립 도서관, 아멕스 신용카드,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 가수 레이디 가가와 비욕 등이 최근 3LD에 프로젝트를 의뢰한 고객이며, 올해는 노키아 벨 연구소, 보그 차이나, 하버드 글로벌 연구소와 함께 대규모 영상, 몰입형 경험 및 공연 기획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러한 성공적인 모델은 3LD의 미션 실현을 위한 활동에 필요한 수입을 창출하고 3LD 네트워크에 속한 뛰어난 기술적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일자리를 제공한다. 특수 프로젝트 그룹은 3LD와 관련된 인재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지원과 자원이 부족했던 예술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상당한 가능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특수 프로젝트 그룹을 통해 3LD의 시설 내에서 크고 작은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예술가 집단에게 그들의 상상력에 부응하는 장비와 기술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울러 저렴한 신기술 및 새로운 기법 관련 연구와 개발을 지원하며 해당 기술들이 완성되었을 경우 외부 예술가와 기업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특수 프로젝트 그룹은 3LD가 대표하는 실험적이며 기업가 정신에 기반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영역으로부터 떨어져 있었던 기관 및 기업들에게 풀뿌리 혁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 이런 활동은 독특한 유기적 시스템으로 발전하여 3LD가 가장 뜻 깊게 여기며 조성하는 예술가 중심 환경과 경제적 여력이 있는 상업 부문 및 기관의 재정적·기술적 자원을 매칭하기 위해 노력한다. 평등, 진정한 창의성, 기술 혁신 등을 장려하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있어 산업 및 예술 부문, 영역, 경제적 분야 간의 생산적인 교류를 활성화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예술적 활동과 순수 예술 제작은 디지털 기술로 인해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미디어, 조명, 특수효과, 기계 및 인간 요소를 포함하는 공연, 설치, 체험형 작품의 모든 부분을 기밀하게 조율하는 일이 가능해졌고 이런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도 가능해졌다. 인간 행동, 신경 신호, 날씨 등과 같이 예술 작품과 완전히 동떨어진 요소들 사이에서조차 상호작용이 가능해졌다. 여러모로 컴퓨터 코딩은 예술 표현의 다양한 방식 간의 범용적 통역사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에게 있어 한 때 각각 고유 영역으로 생각되었던 부분들이 디지털 통합 도구와 기법의 전방위적 영향력 아래에서 복합적 기술이 되었다. 본 프로그램은 예술가가 이처럼 빠르게 변하는 흥미진진한 새로운 현실에 내포된 다양한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도록 돕고자 노력한다.

강력한 새로운 소프트웨어 도구가 시간 개념에 입각한 예술작품의 제작과 표현의 모든 부분을 정밀하게 조율하는 일을 가능케 한다. 이와 같은 저렴한 도구가 다중채널 디지털 영상, 음성, 장비 및 기기 등을 조정하는 신호를 단일 인터페이스에서 관리할 수 있게 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협업하는 일이 보다 수월해 졌으며, 개별 예술가의 역량과 영향력도 커졌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기술의 진보는 지정학적 국경을 보다 희미하게 만들어 제작 활동과 기획 관련 협업의 일상화를 불러왔다. 또한, 동일 라이브 작품의 동시다발적 공연 및 전시, 심지어 거대한 복잡성을 수반한 예술작품을 실현하는 분산 컴퓨팅 기반 가상 슈퍼컴퓨터의 구축 등을 가능케 하였다.

제대로 사용된다면 이런 도구는 예술 활동의 규모, 다양성, 영향력, 완성도, 창의적 유연함을 확대하는 동시에 제작 과정의 비용을 줄이는데 획기적인 역할을 한다. 끝으로,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이런 새로운 도구는 협업하는 예술가 간의, 혹은 관람객과 예술가 간의 연결고리를 보다 강하게 조이거나 반대로 느슨하게 풀면서 작업의 수행을 구성하는 요소 중 ‘인간이 차지하는 부분’을 극대화할 수 있다. 예술가가 작업의 실현, 표현, 경험 등에 있어 관람객을 보다 심도 있게 그리고 친밀하게 참여시킬 수 있게 된다.

예술가들, 특히 미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은 이 심도 깊은 발달을 기본적인 수용 조건 내에서 추구해왔지만, 예술가들 위한 펀딩의 부재와 자원 접근에 대한 한계와 함께 해왔다. 모든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예술가가 되고자 한다는 것은 소규모 자영업을 시작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예술가들은 사업을 창업하고 운영하는 기본적인 스킬을 습득해야만 하며, 나아가 재료와 자원을 창의적으로 쓰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모으는 것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에 따라 본 프로그램이 집중하는 부분은 학제간 예술 작품 제작의 현실 그리고 전체론적 활동으로서의 예술작품 제작이다. 이 과정에서 재료와 자원의 사용과 확보 모두를 예술가가 인식해야 하는 중요한 창의적 책임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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