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을 중심으로 동시대 유명 작가들의 디지털 아트 제작을 지원해 온 아큐테 아트(Acute Art)는 최근 모바일로도 작품 감상이 가능한 어플리케이션을 출시했다.
VR헤드셋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과 아직은 감상이 가능한 컨텐츠의 수가 한정적이라 것은 아쉬움으로 남으나, 지난 6월에 크리스토(Christo and Jeanne-Claude)가 런던에서 열린 개인전 오픈에 맞춰 서펜타인 호수에 띄운 설치 작업 ‘The London Mastaba’를 잠시나마 둘러 볼 수 있었던 것은 인상적이었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대자연의 경관을 거대한 천으로 감는 대형 설치 작업을 주로 해 온 크리스토는 영국에서의 첫 번째 공공 프로젝트이기도 한 이번 작업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총 7,506개의 통을 20m 높이로 쌓아 올리고, 이를 호수 위에 띄웠다. 프로젝트의 방대한 규모로 인해 그동안 작가의 작업은 기록의 관점에서 주로 사진이나 영상 혹은 작가의 드로잉을 통해서만 감상이 가능했다. 그러나 아큐테 아트와의 협업을 통해 물리적으로 관람이 불가능한 다양한 시점에서의 디테일한 감상이 가능해졌다. VR과 360도 비디오기술을 이용하여 마치 새의 시선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제작된 컨텐츠에서 보이는 런던 하이드파크의 주변 경관은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이다.
한편 전 세계 곳곳에 분점을 두고 있는 페이스갤러리(Pace Gallery)는 3월, 뉴욕에서 열린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영국의 대표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아이패드 페인팅 시리즈로 부스를 장식하며 VIP오프닝 데이에만 서른 점, 페어 전 기간 동안 총 서른 여덟 점의 작품을 판매했다. 시리즈는 2009년 처음 시작되었으며, 그동안 프론트 러너들에 의해서만 소비되어 왔으나, 에디션이 제한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최고 4만 달러까지 작품가가 치솟으며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작가는 일상에서 발아되는 순간 순간의 영감을 즉각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뉴 테크놀로지와의 협업이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없었으며, 그림을 조금 더 자유롭게 그리기 위해서였다. 다채로운 색을 바탕으로 유려하고 다양한 선의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호크니의 아이패드 페인팅은 유화가 가지는 화폭의 깊이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아이패드 드로잉은 노화백의 작품 세계를 장르적으로나 개념적으로 더욱 확장시켰다. 하나의 장르에 갇히지 않고, 그동안 다양한 기술을 작품에 접목시켜 온 작가의 지난 행보를 볼 때 작가의 포트폴리오의 다음 장을 장식할 새로운 어떠한 장르가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시리즈가 기대된다.
몇 해 전 만해도 3D프린팅/스캐닝 기술은 뉴 미디어로서 예술계를 군림했지만, 가상현실, 증강현실, 인공지능, 페이스 레코그니션(Face Recognition) 등 이름도, 표현도, 그 의미 조차 가늠이 어려운 새로운 개념의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도입되며 기존의 입지는 상실되었다. ‘뉴 미디어’, 자크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이 이토록 적절하게 적용된 사례는 없었다. 인간이 인류를 위해 우리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할 실용적 수단으로서 기술을 개발했다면, 예술은 이러한 기술을 힘을 빌려 인류가 실용성 이외에도 취할 수 있는 또 다른 가치에 대해 고민한다. 마치 섞이기 힘든, 비록 섞이더라도 궁극적 결합은 힘들어 보이는 서로 다른 영역의 이야기처럼 들리겠으나 결국엔 하나의 목표를 위한 것이다. 예술이 인간의 상상력에 대한 재현이라면, 기술은 그것을 구현하는 가능성에 대한 도전이다.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만남은 옳다. 다소 매니페스토적으로 들리겠으나, 또한 반론 역시 물론 있을 수 있겠으나, 기술은 예술에 마치 처음 그림을 그리는 어린 아이에게 붓을 쥐어 주듯이 새로운 미디엄을 제시해왔으며, 예술은 그 미디엄을 바탕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더 나아가 시대에 기여하는 새로운 가치를 생성해왔다. 예술은 단 한 번도 ‘뉴 미디어’에 기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먼 길을 돌아, 마치 융복합이라는 지금 시대의 새로운 가치에 힘입어 비로소 만난 듯이 보이는 이 둘의 만남은 사실 처음부터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