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T] 로봇 오디세이 3. 게임하는 로봇

2022.3.11

AR 기술은 게임 <포켓몬 고>의 등장과 함께 대중에게 익숙해졌습니다. 로봇 기술도 게임으로 익숙해질 수 있을까요? 김예진 크리에이터는 로봇과 인간이 함께 즐기는 숨바꼭질 게임을 제작했습니다. 좇고 좇기는 놀이를 통해, 강아지 로봇 SPOT과 친해지도록 판을 깔아준 셈입니다.

 

놀이하는 로봇 SPOT
BTS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로봇, 본 적 있으신가요? 강아지를 닮은 로봇 여러 대가 연속적인 웨이브 동작을 연출하거나 군무를 추기도 합니다. 현대자동차가 공개한 영상에서 4족 보행 로봇 SPOT은 흔히 알고 있던 로봇에 비해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여주는데요. ‘앉아’라는 명령에 따라 자리에 앉거나 팔굽혀펴기 동작을 따라하기도 합니다.

로봇을 단순한 도구나 위험한 인공지능으로 보는 극단적 관점은 상상력을 닫아버립니다. 사람과 함께 뛰어노는 로봇은 어떨까요? 강아지 로봇이라는 별명답게 뛰어난 기동성을 발휘해 사람과 소통하는 친구가 되는 것이죠.

 

AR 숨바꼭질 게임이 바꾼 로봇 인터랙션
김예진 작가는 AR 기술을 사용해 SPOT과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숨바꼭질 게임을 제작했습니다. 규칙은 기존의 숨바꼭질과 동일한데요. 술래는 공간을 돌아다니며 제한 시간 안에 플레이어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찾으면 승리하고, 플레이어는 끝까지 술래에게 들키지 않고 숨으면 승리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술래가 인간이 아닌 로봇 SPOT이라는 사실. 또 하나는 플레이어가 살아남기 위해서 태블릿 화면에만 보이는 가상의 AR 엄폐물을 찾아, 그 뒤에 숨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를 위해 사용한 기술이 디지털 트윈(Digital Twin)과 매핑(Mapping)입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의 생명체나 물체 등을 가상 공간에 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편 매핑은 특정한 데이터를 일대일로 짝지어 연동하는 기술인데요. 디지털 트윈과 매핑 기술을 함께 사용하면, 현실의 SPOT과 플레이어의 위치가 가상 공간에 실시간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물론 가상 공간과 엄폐물도 함께요.

이렇게 완성된 AR 숨바꼭질 게임은 로봇과 인간의 상호작용 방식을 3가지 측면에서 변화시켰습니다. 첫째, 상호작용 참여자의 숫자를 1:1에서 1(로봇):N(인간)으로 확장했습니다. 숨바꼭질이라는 형식상 SPOT 1대와 4명의 플레이어가 동시에 소통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둘째, 상호작용의 목적이 일상을 편리하게 해주는 로봇에서, 인간과 함께 노는 관계 지향적 행동으로 바뀌었습니다. 기존의 로봇 청소기, 서빙 로봇 등은 인간이 원하는 대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건조한 계약 관계에 가깝습니다. 반면 AR 숨바꼭질 게임은 놀이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유용함이나 효율성과 거리가 먼 친근감 있는 존재로 다가옵니다.

셋째, 개발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로봇과 소통하며 로봇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게 됩니다. 게임은 명확한 규칙과 목표를 설정하는 것만으로 플레이어 간에 무궁무진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죠. 가령 AR 숨바꼭질 게임에서는 SPOT이 앞을 보고 있을 때 뒤에서 살짝 터치해서 SPOT에게 혼란을 주는 플레이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놀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SPOT의 시야와 반응 속도의 한계를 알게 됩니다. 심리적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건 물론 앞으로 어떻게 상호작용할지에 대한 상상력도 생길 수 있고요.

 

호모 루덴스, 게이밍 로보틱스
문화사 연구자 요한 하위징아는 인류를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의 인간)로 정의했습니다. 인간의 본질이 놀이에 있다고 본 것인데요. 이때 놀이는 그저 쾌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창조 활동으로서 의의를 지닙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AR 숨바꼭질 게임 역시 로봇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새로운 방식의 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놀이하는 인류와 게임하는 SPOT이 함께 만들어 낸 결과가 흥미로운 이유입니다.

 

작가 소개
크리에이터 김예진은 로봇 엔지니어이자 시각예술가입니다. 웨어러블, 모바일, 머니퓰레이터 등 여러 로봇 과제에서 HW, 메커트로닉스, 임베디드 디바이스, 컴퓨터 비전 및 인공지능 개발 등의 작업을 수행해왔습니다.
현재는 로봇 연구소에서 비전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능형 로봇 개발을 위한 인식에 초점을 두고 반응 제어를 통해 자연스러운 동작을 구현하는 연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김예진은 소소한 일상과 자연에서 느끼는 행복을 담은 회화 작품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유채 또는 아크릴릭을 사용해왔으나,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을 다룬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각예술 작업을 시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