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01NE DAY 2021] 먼저 마주한 미래

2022.3.22

<ZER01NE DAY 2021>는 크리에이터 간의 창조적 협업을 통해 미래를 현재에 만나는 놀이터이다. 창조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만들고, 던지는 놀이를 한다. 변화와 혁신을 펼쳐내는 공간이자 누구나 플레이어가 될 수 있는 참여의 공간이며 아티스트, 건축가, 디자이너, 엔지니어, 개발자 등 창의인재들이 생각한 가치를 만날 수 있는 놀이터로 당신을 초대한다. zer01neday.com

 

호모 파베(Homo faber). 쉽게 말해 ‘Man as maker’란 뜻이죠. 도구를 써서 스스로 문화를 만드는 인간의 특징을 일컫는 말입니다. 오래전 프랑스 철학자 앙리 루이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이 주장한 이 개념은 인간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무언가를 만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종이라는 걸 단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 용어는 2000년대 중반, 샌프란시스코 IT 업계에서 시작된 ‘메이커 무브먼트’ 때문에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기술을 활용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그 과정 자체를 놀이처럼 즐기는 과학자 및 창업가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 계기로,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요.

기술이 날마다 고도화되는 요즘, 호모 파베로서 인간이 활용하는 도구의 범위 역시 그 어느 때 보다 확장하고 있는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등 다양한 기술은 우리의 일상은 물론 동시대 예술에 깊이 스며들어 있고, 인간의 인식과 감각에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죠. 3회를 맞은 ‘제로원데이’는 최신 기술을 활용해 국내 크리에이터, 개발자, 스타트업이 모여 창조적 실험을 이어가는 장입니다. 이번 제로원데이의 콘셉트는 놀이처럼 창작을 이어가는 ’Playground’ 로 진행됐다. 용산구에 자리한 옛 현대자동차 원효로서비스센터 부지에서 1회 제로원데이 ‘Create you ( )’, 2회 제로원데이 ‘Borderless in Everything’가 개최되었죠. ‘2021 제로원데이’는 온라인 방식으로 열렸습니다.

사이트는 기존 전시가 열린 물리적 공간을 모티프로 가져와 가상으로 옮겨놓은 형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좌우로 브라우저를 움직이며 전시 공간을 탐색할 수 있고, 예술가, 창업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디자이너, 건축가 등 다양한 주체들이 만든 35점의 프로젝트를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죠. 이번 전시의 주제는 총 4가지. 이동에 대한 미래적 풍경을 상상해보는 ‘Future Mobility’,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 ‘Hyper Connected’, 사용자가 기술과 상호작용하는 ‘Mobility x Player’, 기술을 통해 현실에 신선한 담론을 제안하는 ‘New Learning’까지 다채로운 주제의 프로젝트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낯선 주행 경험, Future Mobility
‘퓨처 모빌리티’ 섹션의 두 프로젝트가 자율주행이 일상화된 앞으로의 주행 환경을 녹여낸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감각적인 경험을 통해 미래를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현실의 형태로 제시합니다. 도시 계획가, 건축가, 뉴미디어 아티스트 등으로 구성된 크리에이터 집단 ‘IVAAIU CITY’는 〈Roadscape MMXXX〉 프로젝트를 통해 2030년 도시의 모습을 건축적 공간 안에 담아냈습니다. 관객은 움직이는 키네틱 월과 빛, 이머시브 사운드 및 가상현실 애니메이션을 조화롭게 배치한 파빌리온 조각을 통해 미래 모빌리티 환경에 대해 다각도로 유추해볼 수 있죠. 크리에이터들의 말에 따르면, 미래에는 광섬유 시스템을 통해 도시의 모든 시스템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라고 해요. 길거리에서도 로봇을 흔히 마주할 것이므로 인공 지능과 로봇이 쉴 수 있는 쉼터를 배치한 점이 눈길을 끕니다. 총 100개의 시각화된 미래 도로 풍경 이미지 모델을 1개로 모아 스크린에 투사하는데, 이 과정에서 관객은 피드백을 반영할 수 있죠. 차창 밖 풍경을 마주하는 경험을 새롭게 재해석한 ‘CT3K’의 프로젝트 <Automatic Sonata>도 주목해볼 만합니다. 주행 중 실시간 수집한 도로 및 환경 정보 데이터를 AI ‘Style Transfer’기술로 변환해 고흐, 피카소 등의 화풍으로 보여 줍니다. 운전자는 주행에 신경 쓸 필요 없으니, 그저 일상적 순간을 예술로 받아들이도록 만든 것이죠.

 

현실과 가상을 잇는, Hyper Connected
‘하이퍼 커넥티드’라는 주제 아래 음악을 활용한 프로젝트들도 인상적입니다. 프로그래밍된 사운드를 재생하며, 소리 자체를 실험하는 기존 사운드 아트의 영역을 넘어, 인간과 기술의 동등한 공존을 고민한 시도가 돋보입니다. 작가 오도함과 서비스 기획자 김영준이 함께한 ‘Team Needs’는 총 8곡의 인간과 인공지능이 협업한 음악 앨범 프로젝트 <ORACLE 2021 – ‘Hymn From Future>를 완성했습니다. 종교 및 철학과 관련한 텍스트를 글짓기 AI ‘GPT-3’에게 학습시켜 텍스트를 만들고, 이를 재편집해 작사 및 프로듀싱한 뒤 안무가 겸 음악가 최기쁨을 통해 보컬과 춤을 추게 만들었죠.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종교적 메시지가 사람의 목소리와 몸짓, 표정으로 표현하도록 해 예술의 과정과 결과물에 대한 참신한 접근과 사유를 유도합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과 피지컬 컴퓨팅 및 사운드 디자인의 경계를 오가며 작업하는 한이삭은 프로젝트 〈자명하지 않은 음악기계 A.I: nUFO〉에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전자 악기를 발명해냈습니다. 기존의 전자 음악이 알고리즘 아래 터치 한 번으로 송출되는 점에 아쉬움을 느낀 그는 사람이 몸을 움직여야 만 소리를 내는 컴퓨터 기반 악기를 개발했고, 악기는 신체 움직임에 따라 전자 사운드를 실시간 합성 및 제어해 소리를 내는 원리를 따릅니다. 컴퓨터와 인간이 서로를 종속하지 않고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포스트 휴먼’적인 자세를 제안하는 것이죠.

 

문제해결을 위한 새로운 협업 방식, Mobility x Player
‘모빌리티x플레이어’ 섹션의 경우, 수집한 데이터를 로봇이나 기기에 반영한 뒤 인터렉티브 방식을 더하거나 메타버스에 게임의 형식을 적용한 프로젝트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 중 사용자의 가장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한 프로젝트는 김영주와 조호연, 게임디자이너와 아티스트 듀오인 룹앤테일이 만든 대체현실게임 <메커니멀>. 생물종이 어려움을 처하게 된 미래의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참여자들은 SNS(트위터)를 통해 매일 정보를 공유하며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갑니다. 공동으로 스토리를 창작하며 게임 속 시뮬레이션을 변화시키는 것이죠. 룹앤테일은 “우리 모두는 함께 살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미국의 학자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말에 착안해 프로젝트를 발전시켰다고 말합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 New Learning
오늘날 현실 세계에 적용되는 기술을 색다른 관점으로 바라본 ‘뉴러닝’ 섹션에서는 교육 전문가들의 실험이 주목해볼 만한 대목입니다. 테크놀로지가 앞으로의 교육 환경에 어떤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 예측해 볼 수 있도록 시사점을 남겼는데요. 아티스트 겸 교육 연구가인 박은영은 키네틱 토이 〈LINKKI 2.0〉을 통해 물리, 수학 등 실제 교육 환경에서 놀이처럼 학습할 수 있는 융합 교육 교재로서 아트 토이의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시스템 엔지니어, 개발자, UI 디자이너로 구성된 팀 E.A.T는 일방적인 온라인 교육의 한계를 뛰어 넘고자 <Don’t Panic> 프로젝트를 선보였습니다. 가상의 캐릭터를 통한 게임적 요소를 활용해 사용자들은 교제나 수업 없이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검색 결과를 공유하며 문제를 풀고, 함께 미션을 해결하며 학습을 이어가죠. 순위로 성적표를 받는 대신 각 캐릭터의 고유한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상호협력적인 방식을 따르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기술과 예술. 두 분야는 앞으로 더욱 불가분의 관계가 될 테지만, 아직 우리의 현실에서는 종종 경계가 나뉘어져 있기도 합니다. 제로원데이는 이런 고정관념을 허무는 데 의의를 지니며 다양한 크리에이터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끌어 냅니다. 지성과 감성의 영역을 넘나들며 기술을 경험하고, 미래를 현재에 만나보는 자리로서 제로원데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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