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01ne News] 기술로 그리는 과거와 미래

2021.6.16

무형의 세계를 거닐기 위한 구찌 신발, 감정 없이 로봇이 그린 명화, 과거를 복원하는 사진. 기술은 불가능이란 단어를 무색하게 합니다.

1. SOMEWHRE SNKR

그곳에서는 신을 수 있고, 이곳에서는 신을 수 없는, 그런 신발이 있을까?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Gucci)는 ’yes’라고 답했습니다. 가상현실에서만 착용이 가능한 스니커즈, ‘구찌 버추얼 25(Gucci Virtual 25)’를 출시하면서 말이죠.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가 AR 패션 플랫폼 워너(Wanna)와 협업해 만든 이 스니커즈에는 파란색 밑창과 끈 묶는 자리에 더블 G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놀라운 건 실제로 이 제품이 구찌와 워너의 모바일앱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

구찌 버추얼 25는 말 그대로 디지털 환경에서만 신어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카메라 앱의 페이스 필터와 비슷해요. 이렇게 스니커즈를 신고, 사진 혹은 동영상으로 기록해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거죠. 만약 이 제품을 구찌 앱에서 산다면, 인-게임 버전이 활성화되어 가상현실 소셜네트워크 플랫폼인 <VR 챗>과 온라인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의 아바타에게 직접 신겨 볼 수도 있어요.

이전에도 구찌는 <로블록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아바타를 위한 가상 웨어러블 제품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또한, <더 심즈 4(The Sims 4)>, <포켓몬 고(Pokémon Go)>, 증강현실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Zepetto)> 등과 함께 브랜드의 수많은 디자인을 적용해 가상의류 세계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혔어요. 물론, 기존 사례들은 모두 실물 제품이 존재했지만, 이번에 출시된 구찌 버추얼 25은 현실 세계에 없고, 오직 디지털 세계에 존재하는 최초의 AR 스니커즈라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크죠!

구찌의 이러한 행보는 메타버스와 NFT로 대표되는 테크놀로지와 특정 분야의 결합이 패션업계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입니다. 특히,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NFT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은 꽤 눈여겨 볼 만합니다.

구찌 버추얼 25는 MZ세대를 겨냥해 소셜 미디어 홍보용으로 출시된 측면이 있지만, 향후 NFT의 형태로 판매한다면 명품의 특수성과 블록체인 기술이 담보하는 원본의 유일무이성이 결합하면서
높은 가격에 거래될 것으로 보이죠. 마치 명품 위 명품처럼요!

다만, 소비자를 위한 비트코인 지갑 설치와 블록체인 구매 매뉴얼이 완비되지 않은 만큼 패션계의 NFT 시장 진입에 회의적인 견해도 있습니다. NFT가 하나의 소비 수단으로 자리하게 된다면, 구찌를 필두로 한 유명 패션 브랜드들이 과연 어떻게 대응할지 두고 볼 필요가 있어요.

2. AI 아티스트, 런던 디자인 박물관 입성!

손으로 붓과 연필을 잡고 인간처럼 작품을 완성하는 로봇이 있습니다. 2019년 탄생한 최초의 인공지능 로봇 아티스트 ‘아이다(Ai-Da)’ 이야기입니다.

아이다는 눈에 달린 카메라로 대상을 포착하고 알고리즘 연산 시스템이 계산한 좌표를 따라 그림을 그립니다. 보통, 사람이 주입한 정보를 학습해 그림을 그리는 일반 로봇과는 다르죠. 창의의 수준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두 번째 개인전을 열 수 있을 만큼!

첫 번째 전시는 2020년 6월 옥스퍼드 대학교의 반 갤러리에서 열렸는데, 전시의 주제는 <담보할 수 없는 미래(Unsecured Future)>였어요. 100만 달러(한화 약 11억 원)의 수익을 올려 큰 주목을 받았죠. 아이다의 두 번째 전시는 런던 디자인 박물관에서 지난 5월 18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타임스지 선정 세계 5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기에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AI 예술 로봇이 소위 ‘메이저’급 전시에 진출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첫 번째 전시 이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그려내는 법을 학습한 로봇이 이번에는 자화상을 주제로 한 작품 3점, 그리고 AI 글꼴 등을 선보이죠.

이번 전시의 주제는 <아이다의 자화상(Ai-Da Self-Portrait)>입니다. 현대인의 셀카(Selfie) 문화와 데이터에 의존하는 삶에 대해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요. 이처럼 놀라운 의식 수준은 단순 모방에만 집중된 로봇의 기능이 창조적 발상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을 무척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아이다 능력의 한계는 어디일까요? 또 그의 작품 세계는 어디까지 확장될까요? 인공지능 로봇의 예술성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지만, 적어도 아이다의 초상만큼은 디지털 시대 인간의 정체성과 창의성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3. 진짜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얼굴은 낯설지 않아요. 다행이도 꽤 많은 자화상을 남겼으니까요. 하지만 실제와 똑같이 묘사한 자화상은 없다는 것, 어디까지나 화가의 주관이 투영된 그림일 뿐, 객관적인 사진이 아니니까. 완벽하게 재현된 빈센트 반 고흐의 얼굴은 존재하지 않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죠. 실제로 고흐가 활동하던 시절에 사진기는 존재했지만, 정작 그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발견되지 않았어요. 그로 추정되는 사진들은 있었지만, 경매사들은 인정하지 않았어요.

완벽한 고흐의 모습을 갈구하던 네덜란드의 디지털 아티스트 루드 반 엠펠(Ruud van Empel)은 마침내 반 고흐의 실제 성인 시절 모습을 그대로 구현해냈죠. 디지털 콜라주 형태로. 작가는 1990년대 초부터 컴퓨터로 다양한 사진을 조합해 실물과 유사한 사진을 제작해왔어요. 그가 만든 사진 속 반 고흐의 모습은 마치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인물의 특정한 부위를 합성하는 딥페이크(Deep Fake) 기술처럼 굉장히 정교합니다. 붉은색 머리와 부리부리한 눈, 오뚝한 매부리코는 화가의 날카롭고 섬세한 성격을 드러내며, 얼굴 곳곳에 깊게 팬 주름에서는 그가 겪은 고뇌의 흔적까지 표현해냈어요. 아니! 발견해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네요.

루드 반 엠펠이 반 고흐의 모습을 찾기 위해 ‘닮은 꼴 찾기 콘테스트’를 개최합니다. 세계에서 모인 고흐 닮은꼴들의 모습을 촬영한 후, 퍼즐을 맞추듯 이들의 피부, 뺨, 코 등 얼굴의 일부분을 오려 반 고흐의 자화상 위에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이 완성된 후에는 프로방스, 작업 스튜디오 등 반 고흐의 주요 활동 무대를 사진의 배경으로 입혀 화룡점정을 찍었죠.

이렇게 재현된 반 고흐의 디지털 초상화들은 2021년 8월부터 반 고흐의 출생지 네덜란드 준데르트(Zundert) 마을에 위치한 빈센트 반 고흐 하우스(Vincent van GoghHuis)에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작가는 초상화와 함께 꽃 정물화, 풍경화 등 반 고흐의 대표작들도 제작해 보는 즐거움을 더했습니다.

‘내가 만든 반 고흐의 초상화가 내가 그를 어떻게 보는지를 보여주듯 다른 이들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반 고흐를 바라볼 것’

반 엠펠의 사진이 주목받는 이유는 가장 완벽을 재현해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재현 방식으로 자유로운 해석을 했다는 점이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