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예술이 있는 공간, ZER01NE

2019.5.17

ZER01NE에 접근하기 위한 열쇳말 중 하나는 ‘얽힘(Entanglement)’이다. 0과 1을 동시에 가진 큐빗(Qubit)의 큐빗 간 상호작용을 가리키는 이 얽힘은 컴퓨터 공학적 지평에서만이 아니라 첨단기술 전반에서 빈번하게 다뤄지는 이른바 융합의 형상이다. 하나가 0 또는 1로 표현되는 비트와 달리 큐빗은 0과 1을 동시에 가질 수 있고, 큐빗은 얽히며 속도를 낸다.

ZER01NE은 비트 하나가 늘면 연산 능력도 하나가 느는 보편 방식에서 벗어나 큐빗 간 얽힘을 통한 n승(제곱)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ZER01NE에 입주한 스타트업과 크리에이터는 단순히 기계·제조기술, 정보기술 혹은 순수미술, 현대미술로 규정되지 않는다. 이들은 0과 1을 동시에 가진 큐빗적 정체성을 갖고, 얽힘의 공간 ZER01NE에서 함께 하고 있다.

ZER01NE이 추구하는 얽힘은 이미 해외에서 기술(Tech)와 예술(Art) 간 융합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기술과 예술을 전공한 사람이 모여 참신한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은 터치스크린, 가상현실, 3차원 홀로그램, 전자책,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초기 형태를 제시한 곳으로 유명하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역시 얽힘에 집중하고 있다.

기술과 예술의 혼합은 기술 소비 방식이 가진 한계를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기술 자체가 빠르게 발전해도 기술이 일상에 스며들기는 쉽지 않다. 예술은 기술을 표현에 사용하고, 표현에 사용된 기술은 일상으로 옮겨온다. 미국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이 현재 하나의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아이팟과 핸드폰이 하나가 되는 예술적 상상력에 기반을 둔다.

MIT 미디어랩에서 개발 중인 ‘트랜스폼’ 기술은 예술이 만나 n승으로 확장하고 있다. 트랜스폼은 사람 손을 따라 큐빅을 움직이는 기술로, 움직이는 큐빅은 화상촉각 전송 기술을 통해 서로 다른 공간에서도 재현된다. MIT 미디어랩은 움직이는 가구를 만들고자 트랜스폼 기술을 만들었지만, 큐빅이 사람 손길을 따라 움직이는 예술 도구가 되면서 활용 영역이 확장됐다.

기술과 예술의 만남은 영역 간 장벽의 붕괴인 동시에 변화의 시작이다. 예술은 첨단기술을 가져와 새로운 표현을 일궈낼 수 있고, 기술은 예술을 통해 새로운 접근 방식을 고민할 수 있다. 시자르 히달고 MIT 미디어랩 조교수는 “저는 주로 과학적인 질문을 하는 입장인데, 예술을 전공자 의견을 들으면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다른 측면을 깨닫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ZER01NE에는 3D 프린팅 소재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햅틱 솔루션 개발 스타트업, 공정·장비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지역 가치 개발 스타트업, 인공지능 로봇 서비스 개발 스타트업 등이 크리에이터들과 한 공간에서 생활한다. 크리에이터들은 ZER01NE에서 컴퓨터 공학 혼합 이미지를 생성하고, 디지털 소재들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등 기술의 예술 활용을 고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