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 of KR] 21세기 천리안, 포탈 프로젝트

2021.8.23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바다와 육지, 사막과 우림, 얼음으로 덮인 지형을 통해 어렴풋이 구별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지도에는 온갖 경계선이 있고 국가와 도시를 구분하죠. 여기, 경계와 거리를 잊게 하는 소통을 시도한 프로젝트가 탄생했습니다.

 

2021년 5월,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와 폴란드 루블린의 광장에 낯선 구조물이 들어섰습니다. 구조물은 두 나라의 국경을 초월해 각 광장의 모습을 비추고 있죠. 사람들은 구조물을 통해 눈을 마주치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눌 수 있습니다. 광장에서 보드를 타거나 춤을 추는 모습, 초여름의 싱그러움 속에서 작은 축제를 즐기는 모습 등을 공유하기도 하죠!

구조물의 이름은 ‘포탈(pOrtal)’입니다. 실시간 영상 송출을 통해 특정 장소를 연결하여 지리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입니다.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먼 도시와 소통할 수 있죠. 말 그대로 천 리 밖을 내다보는 ‘천리안’입니다. 처음 이런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베네딕타스 길리스(Benediktas Gylys)입니다. 그는 창의적인 크리에이터와 과학자를 후원하기 위해 베네딕타스 길리스 재단을 설립하고 포탈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Q. 포탈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를 알려주세요.

A. 오늘날 인류(Humanity)는 사회, 경제적 양극화와 기후변화 등과 같이 잠재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문제점에 직면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문제들은 과학자나 운동가, 지도자 혹은 지식, 기술 등이 부족해서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부족 중심주의, 공감 능력 부족, 세계에 대한 (주로 국가 단위로) 고립된 인식 등이 원인이죠. 우리가 포탈 프로젝트를 실현하기로 마음먹은 이유입니다. 포탈은 편견이나 낡은 관념, ‘우리’와 ‘그들’이라는 실체 없는 이분법을 뛰어넘는 화합을 위한 가교입니다.

 

Q. 원형의 포탈로 디자인한 이유가 있을까요?

A. 프로젝트의 핵심적 기술을 담당했던 빌뉴스 게디미나스 기술대학교(VILIUS TEC)의 링크 메뉴 팩토리(Link Menų fabrikas) 혁신센터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여러 SF에서 구현된 다른 세상과의 통행로처럼 원 형태를 차용한 거죠. 수레바퀴와 닮은 포탈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을 여행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또한, 지구와 인간의 눈동자도 원형이라는 것에도 의미가 있어요. 사람들은 체형과 피부 색깔은 모두 다르지만, 눈동자만큼은 모두 동그랗죠.

 

Q. 실시간 영상 송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어떤 기술이 프로젝트에 적용됐나요?

A. 도시를 연결하는 ‘인터렉티브 브릿지’를 창조하기 위해서 여러 지식과 기술이 동반되었습니다. 크게 나누어보면 3D 모델링 디자인, 디지털 콘텐츠 개발은 물론, 포털의 물리적인 제작과 운반에 이르기까지 협력이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물론 지자체의 힘도 필요했죠. 빌뉴스 게디미나스 기술 대학교와 빌뉴스, 루블린 시가 손을 잡고 진행했어요. 디자인은 복잡한 장치를 모두 내포하면서 기물 파손 위험을 방지하고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가장 단순한 형태를 선정했죠. 프로토타입 제작을 위해, 다양한 재료를 테스트했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최종적으로는 콘크리트, 스테인리스강과 강화 유리를 사용하여 포탈을 제작했고 결국 지연 없이 완벽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완성품을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Q. 두 도시를 연결하기까지 5년이 걸렸는데요. 프로젝트 부지가 될 도시를 선정하고 포탈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요?

A. 우선, 무게가 11t에 이르고 높이는 3.4m에 달하는 큰 구조물이기 때문에 설치하는 것은 물론 화면에 비칠 시야가 확보되는 부지를 찾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죠. 또한,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어요. 저희에게 공감할 파트너 도시를 찾고,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몇 년이 걸렸죠. 접촉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시가 프로젝트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처음부터 계획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곳도 있었고요. 일면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어요. 포탈이 완성되었을 때의 분위기와 감정을 간단한 PDF 파일만으로 읽어내기 쉽지 않을 테니까요.

 

Q. 국제 협력 센터의 디렉터 크지슈토프 스타노프스키는 ‘자유와 관용의 공간을 구축하면서 도시의 역사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또 환기하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이미 프로젝트를 성사한 빌뉴스와 루블린 그리고 추진 중인 도시들을 선택한 배경이 궁금해요.

A. 우선 이웃 나라와 깊은 우애를 되새기고 싶었어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친밀한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싶었죠. 바로 다음에 연결할 도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팬데믹이 끝나면 다시 속도를 내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싶어요.

 

Q. 포탈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A. 포탈 프로젝트는 일회성이 아니에요. 가까운 미래, 세계 여러 도시에 수십 개의 포탈을 설치하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포탈 앞에 서서 화면을 몇 분 간격으로 바꾸어 가며 사용자가 다른 문화권을 여행하게 할 예정이죠. 저희가 바라는 것은 여러 문화권 사이의 거리를 지우고, 대중의 움직임을 자극하고, 공동체에 스며드는 거예요. 장기적으로는 어느 대륙의 어떤 도시든 다른 문화와 사람이 서로 연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죠. 포탈 시티 네트워크(#pOrtal Cities Network)의 최초 10개 도시를 만들고자 꾸준히 여러 도시와 논의를 펼치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 한국에서는 소식이 없어요! 생동감이 넘치는 아름다운 한국의 도시 중에 포탈 프로젝트를 함께 하실 의향이 있는 도시는 꼭 저희에게 연락해주세요.

 

작가 소개
베네딕타스 길리스 재단(Benediktas Gylys Foundation)은 베네딕타스 길리스의 주도로 2013년에 설립되었습니다. 과학과 창의력, 포용과 기업가 정신을 추구하고, 크리에이터들을 후원하며 함께 작품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중의 인식을 촉구하는 연구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포탈 프로젝트> 외에도 출판물을 발행하고 베니스 비엔날레 리투아니아 파빌리온에 협력하는 등 다양한 문화, 기술 사업에 참여해 왔습니다.